요즘 틈이 나면 <슬램덩크>를 조금씩 사서 보고 있다. 여름휴가가 뭐 별거 있나. 에어콘 선풍기 틀어놓고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만화책 보면 그게 휴가지.
짤은 강백호가 해남과의 시합에서 실수를 한 게 부끄러워서 소연이를 피해 달아나다가, 쫓아오던 소연이의 자빠링을 보고서 돌아가는 모습인데 새삼 좋네. 자신을 따라오던 이의 상처를 보고서 방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부끄러움도 잊어버리는 것, 이건 사랑 아닙니까. 네네.
여하튼 <슬램덩크>의 이 장면 보는데 자연스레 <타임 에프터 타임>이 떠올랐다. <타임 에프터 타임>이 그런 내용 아니겠습니까. 내가 많이 앞서가고 있는데, 뒤에 있던 사람이 날 부르면서, 고 슬로우, 어? 천천히 가란 말이다 이생키야, 내가 지금 뒤처져있지 않느냐, 어?
그러자 화자가 다시 말하길, 내가 앞서감으로써, 나중에 네가 길을 잃어도 시간이 지나면 날 찾을 수 있을 것이다아아, 네가 자빠링하면 내가 기다려주겠다아 하는... 자신이 앞서가고 있는 것에 대해 합리화와 말장난이 개쩌는 곡으로... 어엌.
세상 사람들은 어떤 곡을 듣든 다 자기 입장에 맞게 해석하기도 해서, 작가 지망생 시절엔 나보다 한참 앞서가는 듯한 작가님 생각하면서 이 곡을 듣기도 했다. 그러니까, 배지영 작가님 같은 분에게, 아아, 작가님, 좀 천천히 가시면 안 돼요? 저 지금 엄청 자빠링 하고 있는데요, 싶었던.
무언가를 앞서 경험해보면서 대차게 실패해보고 성공도 해보았던 일을 기록으로, 가령 책 같은 걸로 남겨두면 같은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에게 참 도움이 되는 듯. 뭐 투병기(?) 같은 책이 그럴 수도 있겠고, 작가지망생에겐 이경의 <난생처음 내 책>이나 <작가님? 작가님!> 같은 책이 그렇지 않겠느냐 하는... 네? 그렇지 않습니까?
<타임 에프터 타임>은 신디 로퍼 원곡이지만 에바 캐시디의 버전을 훨씬 좋아한다. 듣고서 정말 많이... 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