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고 웃는 것도 아닌데

by 이경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거실 한쪽에 카메라가 있었다. 90년대 초반이었으니 디카가 나오기도 전이었고 당연하게도 필름 카메라였다. 그 시절에 초등학생 6학년이 카메라를 만져볼 기회가 뭐 많이 있었나. 카메라는 그저 어른들의 전유물이었지. 호기심과 신기한 마음에 친구와 함께 카메라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만져보았다.


무엇이든 잘 모르는 걸 처음 경험하게 될 때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위험이 따르기도 한다. 카메라를 많이 만져보지 못했던 나는 카메라의 필름이 빛에 노출되면 그동안 찍어두었던 사진들이 모두 날아간다는 걸 알지 못했다. 어리바리 카메라를 만지다가 필름을 넣는 케이스가 열렸고, 카메라에 대해 잘 몰랐던 나도 그 순간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친구 아버지는 사진이 모두 날아간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아닌 친구에게 화를 내셨다. 차마 아이의 친구까지 혼내지는 못하셨던 거겠지. 필름에는 친구 사촌 누나의 대학 졸업 사진이 들어있었다고 했다. 민폐를 끼쳤구나. 친구에게도, 친구 아버지에게도, 친구의 사촌 누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질 못했다. 그분들에겐 정말 소중했을 찰나의 순간들이었을 텐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세상이 편해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소중하게 생각했던 어떤 것은 예전만 못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게 사진이 아닌가 싶다. 필름을 넣고. 한 장 한 장. 뭐, 심혈을 기울일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신중하게 사진을 찍고서. 촤르르르. 다 찍힌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고. 그렇게 인화 과정을 거쳐야만 간직할 수 있었던 사진이었는데. 핸드폰에 카메라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쉽게 찍고 또 쉽게 지운다.


그래서인지 스마트폰이 탄생하기 전에는 사진을 소재로 삼은 애절한 감성의 곡들이 좀 있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곡을 꼽으라면 박혜영의 <사진>이다. 박혜영이 부른 <사진>은 할 일이 없어서 시작한 책상 정리에서 하필이면 옛 연인의 사진이 나오고, 하필이면 사진 속 그 사람은 웃고 있고, 헤어진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나는 그 사진을 보면서 울고, 하는 조금은 신세 처량한 내용의 곡이다.


김현철이 작사 작곡한 곡으로, 이소라가 이 곡을 탐냈다고 했었나, 원래 이소라에게 주려고 했던 곡이랬나, 뭐 그런 이야길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이소라가 불렀어도 정말 잘 어울렸겠다는 생각이 든다. 곡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꼽으라면, 그대를 찍은 것도 아닌데 그댄 거기서 웃고 있음을 노래하는 부분이다. 화자는 분명 모든 사진을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 서랍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대를 찍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겠지. 자신을 찍은 것도 아닌데 웃고 있었다니. 평소에 무척이나 잘 웃는 사람이었나 봐.


누군가 카메라를 향해 환히 웃는 이의 사진을 볼 때면 그 사진을 찍어준 이는 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누구였기에 사진 속 저 사람은 저렇게 환히 웃는 걸까. 저 웃음이 분명 날 향한 웃음은 아닌데, 아름답네 하면서. 웃는 모습은 웬만해선 다들 예쁘니까. 웃는 얼굴에는 침도 못 뱉는다고 하니까. 그래서 다들 사진 찍을 때 그렇게 웃으세요를 강요(?)하는가 싶기고 하고.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중 하나는 사진 찍을 때 웃는 게 아닌가 싶다. 사진 찍을 때 누군가 웃으라고 하면 나는 왜 그렇게 볼 살이 부들부들 떨리는지.


물건을 쉽게 버릴 수 있는 성격의 사람이 아닌지라, 책상 서랍은 늘 번잡하게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다. 박혜영이 부른 <사진>의 주인공처럼 나 역시 책상 정리를 할 때면 생각지도 못한 추억의 물건들이 나올 때가 있다. 버릴까. 놔둘까. 놔두자니 미련이고, 버리자니 추억이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사진>의 노랫말처럼 어느 날에는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J의 사진이 나왔다. 사진이 귀하던 시절, J가 나에게 주었던 몇 장의 사진 중 하나였다.


사진이란 거 참 묘하지. 찍는 순간 과거가 되어버리는 것. 젊은 시절의 J는 사진 속에서 그렇게 싱그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웃고 있었다. 나를 향해 웃는 것도 아니었는데. J도 분명 잘 웃는 사람이었구나. 누가 J를 이렇게 웃게 했던 걸까. 나와 함께 지내던 시절에도 J는 이런 웃음을 보였던가. 책상 서랍을 정리하는 날에는 왜 이렇게 처량하고 궁상을 떨게 되는 건지. 이런 거 보면 김현철이 가사를 진짜 잘 쓴다니까, 정말. 그러니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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