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를 들으며 울던 밤

by 이경



2018년 5월 25일 금요일. 그날 저녁, 아내는 어쩐지 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다. 퇴근길에 집 앞 봉구비어에 들러 해당 매장에서만 판다던 닭날개를 사들고 집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이미 잠이 든 늦은 시간, 아내와 티비를 보며 치킨을 뜯었다.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빨아가며 티비를 보는데 박정현이 포르투갈의 한 도시 거리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1971년 돈 맥클린(Don Mclean)이 발표했던 <Vincent>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그린 곡. 우리가 알고 있는 빈센트의 삶이란 게 그렇다. 살아생전에는 미친 사람 취급받으며 인기도 모르고 살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서야 천재로 불린 사람. 돈 맥클린의 <Vincent>는 그런 모습을 노래한다. 이제야 우리는 당신을 이해하노라고.


TV에서는 박정현의 목소리에 노랫말이 번역되어 자막으로 나왔다. 박정현의 목소리를 멍하니 듣다가, 곡이 중반부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곡에 등장하는 'Artist'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감정이 요동친 것이다.


아내에겐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씻는 척하며 주방 싱크대에 물을 틀어놓고는 그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티비 앞에 돌아와 앉았을 때 눈시울이 붉어진 내 모습을 보고 아내는 물었다.


"울어? 왜 울어?"


2017년 가을, 책을 써보라는 지인의 권유에, 음악 에세이를 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동안 써두었던 글과 새로운 글을 모아 2018년 초부터 출판사 여러 곳에 투고했지만 이렇다 할 긍정의 답을 주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지쳐가고, 이제 그만둘까 싶었던, 5월 15일 스승의 날, 한 출판사 대표님으로부터 투고 답장 메일을 받았다. 답장 메일에는 '글이 참 좋네요'라는 짧은 문장이 적혀있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투고자의 마음을 흔드는 법을 배우는 걸까. 어쩜 날도 이런 날에 맞춰 답장을 보내는 건가 싶었다. 내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을 만큼 짧지만 감동적인 문장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5월 22일 출판사 대표님은 내게 두 번째 메일을 주었다.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좋은 글입니다.'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예술이라고 했다던가. <Vincent>를 들으며, 'Artist'라는 단어를 보고서 눈물이 난 까닭은 나 역시도 그동안 많이 외로웠기 때문이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조각을 빚든 혹은 사진을 찍든, 노래 부르든, 곡을 쓰든 자신의 창작물을 이해하고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다면.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이뤄지는 대부분의 행위는 자기만족이 아닌 이상 그저 외로울 뿐이다.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봐 주던 종자기가 있었듯이, 빈센트 반 고흐에게 동생 테오가 있었듯이. 내게도 내 글을 알아봐 줄 그 누군가가 그토록 필요했고 이제는 그런 사람이 생겼다는 생각에 그간의 설움이 눈물로 쏟아진 것이다.


아내가 던진 왜 우느냐는 질문에 한참을 더 울먹거리고서야 나는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 계약하고 싶대."


출판사의 계약 제안 메일을 받고서 며칠 동안 혼자서 간직하고 있던 이야기를 아내에게 나누는 순간이었다. 치킨을 뜯으며. 티비를 보며. 빈센트를 듣던 그날 밤엔 그렇게 많이도 울었다.


*2018년, 계약을 하고 싶다는 출판사와는 계약서 초안까지 주고받았지만 계약을 맺지는 않았다. 2018년 그렇게 출간 가능성을 타진했던 음악 에세이는 2022년까지 네 권의 책을 내는 동안에도 여전히 미계약으로 있다가 다섯 번째가 되어서야 출간 계약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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