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꿈'만큼이나 뜻이 달리 해석되는 단어가 있을까. 그러니까 누군가 나에게 "계속 꿈꿔."라고 말한다면 이게 나를 향한 응원인지, 혹은 헛물켜지 말라는 비아냥인지를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꿈'이라는 단어에는 이런 양면의 모습이 있어서, 많은 이들이 꿈 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거겠지. 어쩌면 이룰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원하는 걸 얻게 될지도 몰라, 하는 기대를 가지고 웃으며 살다가도, 또 어쩌면 이룰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절망의 마음으로 울고야 말게 되는.
어릴 때부터 '꿈'에 대한 곡을 좋아했다. 언젠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거라고 노래하던 임재범의 <비상>이나, 주변에서 누가 뭐라건 내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게끔 해주었던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곡들. 나에게도 어릴 때는 분명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곡들을 좋아했던 거겠지.
세상 모든 꿈이 끝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살아보니 삶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학창 시절부터 막연히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몇 번의 기회도 있었다. 그 몇 번의 기회가 하나둘 수포로 돌아가는 사이 나이를 먹었고, 꿈의 크기는 자연스레 점차 작아졌다. 그럼에도 꿈을 놓고 싶진 않아서, 서른 가까이 되도록 직장인 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 삶 언저리에 꿈을 가둬놓았지만, 더 많은 시간이 흐르자 결국 끝내는 소멸 해버렸다. 이루지 못한 꿈. 나에게 재능이 없었던 건지, 노력이 없었던 건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 그런 물음과 후회만이 꿈이 있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꿈을 완전히 놓아버린 후에야 알게 된 일이 하나 있다. 설령 이루어지지 못한 꿈이라도 계속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은 꽤 괜찮다는 걸. 이루고자 하는 일이 사라져 버리자 삶은 극도로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그저 안주하는 삶.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일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마음과 눈빛이 모두 텅 비어버린 듯이.
음악을 하고자 하는 꿈을 대신해 새로운 꿈이 생기기까지는 거의 10년 가까이가 걸린 것 같다. 직접 음악을 하진 않더라도,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음악 에세이를 책으로 내는 일 같은 거. 그러니까,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일. 그러다가도 내 주제에 무슨 책이야 하는 마음이 날 제자리에 멈추게 했다.
멈추어있던 나를 움직이게 했던 건 한 지인의 권유였다. SNS에 종종 올리던 음악 글을 보던 한 지인께서, 글이 재밌으니 책을 한 번 써보라고 이야기해준 것이다. 어쩌면 그저 가벼운 인사치레였을지도 모를 그 말에 덜컥 꿈이 생겨버렸다. 다시 또 웃고 울게 된 삶.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텅 비었던 마음에 무언가 묵직한 게 생겨난 기분이었다. 그저, 꿈 하나 때문에.
2018년 음악 에세이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하면서 마음이 힘들 때면 늘 김윤아의 <꿈>을 들었다. 김윤아가 부른 <꿈>은 전에 들었던 여느 꿈과 관련된 곡과 달리 지극히 현실을 노래하고 있었다. 꿈이 가지고 있는 양면의 모습을 모두 다루고 있었다. 나를 살게 하고 죽고 싶게 만들기도 하는 그 꿈을 노래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김윤아의 <꿈>이 좋았던 점은, 간절히 원해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어 좋았다. TV 강연 등에 나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미웠다. 저 사람들은 이루었구나. 꿈을 이루었구나. 저들의 재능과 노력은 대단하겠지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질 거라고 말하는 그 가벼움에는 나의 꿈이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출판사 열 곳에만 글을 보내봐야지, 열 곳은 아무래도 부족하니까 서른 곳까지만 던져볼까, 오십 곳, 백 곳... 스스로 약속한 기회의 숫자를 허물고 새로이 늘려가며 나는 음악 에세이 원고를 출판사에 던지기 시작했다. 1년 동안 이백 여 곳의 출판사에 글을 보내고도 책이 되지 않자, 간절히 원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렵사리 새로이 생긴 꿈인데, 이번에도 놓아버리면 그때는 마음이 정말 힘들 거 같은데. 그러니 김윤아의 <꿈>을 들으며 많이 웃고 울 수밖에. 김윤아의 <꿈>은 현실적인 꿈의 양면을 노래하면서도, 나에게 많은 위로를 건네주었으니까.
그 시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가능과 불가능 사이를 수시로 오갔다. 200곳이 넘는 출판사에 글을 보내면서 하나같이 모두 거절의 답을 했더라면 나는 의외로 쉽게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그만둘까, 포기해야겠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출판사들은 툭툭 희망고문을 하기 시작했다. 글이 좋은데요, 만나보고 싶습니다, 계약하고 싶습니다, 같은 이야기들. 실제로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고, 출간 계약서가 오가기도 했다. 한 편집자는 절대 글을 놓지 말고 계속 써달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음악 에세이 원고는 책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꿈 때문에 가끔 웃고 많이 울던 시간이 지나자, 꿈은 묘하게 모양을 바꾸어 음악 에세이가 아닌 소설의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출판사에 투고하던 작가 지망생 시절의 이야기를 소설로 푼 글이 책이 된 것이다. 삶은 가혹하지만 이처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꿈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출판사에 투고해서 책이 나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0.1에서 1% 사이 어디쯤. 첫 책 이후로 두 권의 책을 더 출판사에 투고해서 출간했다. 그러자 책을 읽어준 몇몇 분들에게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투고를 해서 책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나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질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안 될 확률이 높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나요? 아니요. 간절함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운이 조금 좋았던 것 같아요. 다만, 글을 쓰고자 하는 그 꿈에는 응원을 보냅니다, 하는 식으로 말한다.
마치 김윤아의 <꿈>이 나에게 말해주었던 것처럼.
<꿈>은 밴드 자우림의 보컬인 김윤아의 네 번째 솔로 앨범 [타인의 고통]에 수록된 곡으로, 김윤아가 작사 / 작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