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

by 이경



요즘 심심할 때 읽고 있는 책이다.

유종호 <사라지는 말들>


사라져 가는 것들, 특히나 죽어가고 새로 태어나는 말에 관심이 많다. 순서 상관없이 그저 아무 페이지나 펴서 보기에 좋은 책인데 보고 있으면 내가 전연 알지 못하는 단어도 있고, 이건 여전히 많이 쓰지 싶은 단어도 있다.


책쓴이가 1935년생으로 나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뭐 이런 걸 가리켜 세대차이라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며칠 전 나와는 띠동갑의 어느 분에게 이번 추석에 어디 내려가시는지 물은 일이 있었는데 그분 왈, 전주에 내려가신다고 하여, 아 선생님 호남분이셨습니까아, 하였더니 깔깔 거리며 나더러 옛날분이라고... 요즘 젊은이들은 '호남선' 같은 거 모를 거라고 알려주었다. 옛날분이라니... 으으... 굴욕이고, 치욕이었다. 부들부들. 잊지 않겠다 띠동갑 청춘...ㅋㅋ


여하튼, 아 그렇구나. 요즘 젊은이들은 영남 호남을 모를 수도 있겠구나 싶었으니 이 역시 세대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말이란 것 안 쓰면 사라지니까.


오늘 인터넷에 재미난 일이 있었는데 '심심한 사과'의 '심심하다' 뜻을 모르는 이들이 대거 등장하여, 문해력 문제네 책을 안 읽네 상식이네 어쩌네 저쩌네 등등의 의견이 와리가리 설왕설래하였던 일이다.


난 뭐, 이거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거 모르는 애들은 책 읽을 시간에 다른 더 재미난 거 하고 있었겠지. 그걸 책 안 본다고 탓하면 그건 좀 '지식의 저주'에 걸린 거 아닌가 싶다능. '지식의 저주'가 뭐냐면... 여하튼 '지식의 저주'에 걸리면서 이제 꼰대가 되고 그런 겁니다. 모르면 알려줘야지. 반대로 젊은이들이 신조어 퀴즈 내면 곤란해할 사람들이...


며칠 전 인터넷에서 재미난 사진을 보았는데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어르신이 '브로콜리'를 '브로커'로 적어 파는 거였다. 그걸 두고서 어르신을 탓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물론 어르신과 젊은이들의 교육 환경은 다르지만, 중요한 건 세대별로 익숙한 단어가 있다는 거지.


뭐, 글밥 먹고사는 기자 같은 직업군의 사람들이 이틀을 '2틀'로 쓰고 사흘을 '4흘'이라고 쓰면 곤란하겠지만, 동음의 뜻을 모르는 건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일 아닌가.


여하튼 사람들이 모르는 건 잘 안 쓰고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지 뭐. 그런 점에서 나는 '심심하다'를 모르는 이들보다 계속해서 의도적으로 사어를 만드는 이들을 훨씬 경계하게 된다.


특히 최근 몇 년 간은 언어 감수성이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유로 자꾸만 사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사회적 합의도 없이, 또 사어로 만들려는 이유의 근거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단어가 '시집' 같은 단어다. '시집'을 사어로 만들려는 이들의 뜻과 목적은 알겠지만, 역시나 그 이유라는 게 좀 모호하다.

거기에 대고 "아, 그럼 혹시 장가라는 단어도 같이 없애야 하나요?" 물으면 나올 수 있는 대답도 여럿이라... 개개인의 언어 감수성이란 게 참 어렵다.


지난번에 암 전문 의사가 한 방송에 나와서,

"어르신이 자식들 시집장가 다 보내고 병이 들어서..." 라며 안타까운 노환자의 상황을 말한 적이 있다.


만약 시집장가라는 단어가 사어가 되어,

"어르신이 자식들 결혼 다 시키고 병이 들어서..." 라고 말했다면, 말의 정보도 뉘앙스도 달라져버릴 테다. 말이란 그런 겁니다. 네네.


결은 좀 다르지만 요즘 티비 광고에서 적금 예금은 왜 '한다'라고 하고 대출은 왜 '받는다'라고 하냐는 것도 봤는데... 그거야 적금 예금은 내 돈 은행에 맡기니까 하는 거고, 대출은 은행돈을 빌려 받는 거니까 받는다고 하지... 말장난 하기는... 싶기도 했다.


말이란 뭐 이렇게 재밌죠. 죽기도 하고 새로 태어나기도 하고 내가 안다고 남들이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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