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을 걸어간다는 것

by 이경


2018년, 글을 쓰고 책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내는 물론 다른 가족이나 친구 그 누구에게도. 작가가 되기보다는 영원히 지망생으로만 남을지도 모를 불안한 상황에서 괜히 말뿐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작가 지망생 누군가는 '문우'라고 부를만한 사람을 만들어가며 글쓰기 모임이나 합평을 한다고도 하던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타인과 웃고 어울리며 글을 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보낸 작가 지망생의 시간에 유독 더 외로워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글을 쓰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출판사 사람들에게 글을 보내고서는 평가를 받고, 또 그 평가라는 게 대부분은 우리 출판사에서는 너의 글을 책으로 내줄 수 없다는 반려 메일이었으니까. 혼자서 책을 준비하던 2018년은 그렇게 외로움과 상처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받아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기에 자주 들었던 곡이 있었으니 영화 [땐뽀걸즈]의 OST로 '구체적인 밴드' 출신의 윤중이 작사, 작곡하고 김사월이 노래한 <땐뽀걸즈>이다.


[땐뽀걸즈]는 거제에 있는 한 여고에서 댄스 스포츠를 가르치는 체육 선생님과 그에게서 춤을 배우는 학생들을 취재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훗날 동명의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런 스토리 때문인지 <땐뽀걸즈>를 들으면 애틋한 감정과 함께 학창 시절이 떠오르곤 했다.



어려서부터 책을 싫어하진 않았는지 고등학생 때 도서부원으로 활동을 했다. 영화 [땐뽀걸즈]의 학생들이 댄스 스포츠 대회를 준비하듯 우리들도 같은 곳을 바라보며 활동한 일이 있다. 바로 1년에 단 하루였던 학교 축제를 준비하던 시간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심심하고 따분해 보이는 도서부에서 학교 축제 때 할 수 있는 게 뭐 그리 있을까. 우리는 몇몇 책들을 선정해 읽고서 판넬에 적어 소개하기로 했다. 그때 선정한 책 중 하나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였다. 우리는 같은 책을 읽고서 의견을 나누었다. 무언가를 함께 하고 있었다.


축제를 준비하던 어느 늦은 밤에는 학교 정문이 잠겨있는 바람에 담을 넘기도 했다. 담 위를 비추어 주던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로는 하루살이들이 가득했다. 마치 일탈이라도 하는 듯 친구들과 담을 넘던 장면과 가로등 아래 하루살이들의 이미지가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축제를 앞두고는 스폰서를 구하기도 했다. 축제 팸플릿에 광고를 해주겠다며 학교 주변 상인들에게 광고비를 구하러 다녔던 일인데, IMF를 지나던 시기라서 그랬는지 상인들은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거절을 받아내는 일. 혼자라면 하기 어려웠던 말과 행동들이었을 텐데, 친구들과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땐뽀걸즈>에서 노래하는 대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작가 지망생 시절 <땐뽀걸즈>를 들으며 서글픈 마음에 울컥하는 시간도 많았는데, 친구들과 함께했던 고교 시절과 달리 이제는 혼자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거절을 받는 일은 어려서나 커서나 늘 어려운 일이니까. 그러니 어쩌면 나는 깊은 외로움에 글 친구를 얻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에 군산에서 활동하는 배지영 작가님의 출판사 투고 후기를 읽게 되었다. 배지영 작가님은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첫 책을 낸 이후, 출판사에 투고하여 두 번째 책 <소년의 레시피>를 냈다. 배지영 작가님은 투고로 책이 나올 확률은 1% 정도라고 했다. 배지영 작가님이 쓴 투고 후기와 <소년의 레시피>를 보며 나는 자연스레 그의 팬이 되었다. 그가 앞서 걸었던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렇게 배지영 작가님에 대한 팬심을 가지고 지내던 어느 날, 배지영 작가님이 내 글을 구독한다는 알람을 받았다. 내가 동경해오던 작가가 내가 쓴 글을 읽어준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고 놀라운 경험이다. 어쩌면 작가와 독자라는 평범한 사이로 남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몇몇의 우연이 겹치면서 우리는 랜선을 타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보다 아홉 살 많은 그에게 나는 그간 작가 지망생으로 느꼈던 외로움과 설움을 토로했고, 작가님은 조용히 귀 기울여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누군가의 징징거림을 오랜 시간 들어주는 일. 나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 그러니 생각하면 배지영 작가님 덕에 작가 지망생 시절의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작가 지망생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글쓰기에 대한 충고나 조언이 아닌,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닐는지. 축제를 준비하던 고교 시절, 같은 담을 넘던 친구들과 어두운 담을 비추어주던 가로등 불빛이 있었듯이, 배지영 작가님은 작가 지망생이라는 막막한 길 위에 있던 나를 위해 등불을 밝히며 걸어주었던 것만 같다.


첫 책을 내기 전 서울에 일을 보러 온 배지영 작가님을 용산역에서 처음으로 만나 뵈었다. 용산역 서점 안에 있던 카페에 앉아 한참 출판사와 교정을 보고 있던 첫 책 <작가님? 작가님!>의 교정지를 작가님에게 보여주었다. 교정지 안에는 배지영 작가님과 작가 지망생이던 나의 이야기가 소설이란 이름을 빌려 쓰여있었다.


몇 권의 책을 낸 지금 <땐뽀걸즈>를 들으면 예의 그 도서부원 시절과 함께 배지영 작가님이 떠오른다.

막막한 세상에 같은 길을 걸어가는 이가 있다는 것은 이토록이나 힘이 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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