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을 읽고서 스스로 찡한 마음을 갖는다고 하면 아마도 우스워보이겠지. 실제로 그런 일은 거의 없고, 글을 쓰고 나서 갖게 되는 대부분의 감정은 부끄러움에 가깝다. 다만 첫 번째 책 <작가님? 작가님!>의 에필로그를 쓰고서 다시 읽어보았을 때는 조금 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간절히 원하던 첫 책을 마무리하는 페이지이기도 했고, 첫 책을 준비하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님? 작가님!>의 에필로그에는 책을 준비하면서 고마웠던 분들을 적었다. 부모님과 가족, 배지영 작가님, 처음으로 나에게 책을 써보라고 권해주셨던 문현기 교수님이나 음악 웹진에서 함께 글을 쓰던 동료들. 그렇게 에필로그에 적었던 이들 대개는 지척에 머무르고 있는 지인들이었다. 단 한 사람, 영국인 폴 웰러(Paul Weller)만 빼고는. 나는 왜 데뷔작 에필로그에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의 이름을 적어냈을까.
폴 웰러는 1958년 영국에서 태어나 밴드 더 잼(The Jam)과 스타일 카운슬(Style Council)을 거친 뮤지션이다. 곡도 쓰고, 가사도 쓰고, 노래도 하고, 기타도 치고, 베이스도 치고, 건반도 치는 그야말로 북 치고 장구 치는 전천후 천재 뮤지션이랄까. 특징이라면 한국에서는 희한하리만큼 인기가 없다는 것 정도. 폴 웰러를 알게 된 계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스타일 카운슬 시절 그가 만들고 불렀던 음악을 사랑한다. 끝내주게 멋진 그의 목소리 또한.
살다 보면 유독 많은 영감을 안겨주는 곡을 만나게 되는데, <작가님? 작가님!>을 쓸 때는 스타일 카운슬의 어느 한 곡이 특히나 그랬다. 파도치는 소리와 거품이 이는 소리, 갈매기 소리를 이용해 청각적으로 바다를 들려주는 <It's a Very Deep Sea>이다. 이 곡에서 화자는 깊은 바다로의 다이빙을 노래한다.
다이빙. 다이빙. 다이빙. 그리고 또 다이빙. 오오, 다이빙.
가만히 놔두어도 괜찮을, 보물보다는 깡통에 가까운 것들을 건져 올리기 위해. 가치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것들을 건져 올리기 위해. 계속해서 다이빙을 하고 어쩌면 수면 위로 올라와 감각을 되찾을 거라고 노래하는 곡은 그 자체로 예술인의 영감을 노래하고 있는 듯했다.
과거를 파헤치고 건져 올리기 위한 깊은 바다로의 다이빙. 에세이를 주로 쓰는 나의 글쓰기가 폴 웰러가 노래하는 깊은 바다와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다 막힐 때면 꼭 그렇게 <It's a Very Deep Sea>를 꺼내 들었다. 조금은 울먹이는 듯한 폴 웰러의 음성 때문인지 들을 때마다 우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하고픈 이야기가 생겨났다. 그러니 첫 책의 에필로그에 고마운 사람으로 폴 웰러의 이름을 적어 내는 수밖에.
글을 쓴다는 일이 그렇다. 지나온 내 삶이 깊은 바다라면 나는 자꾸만 그 안을 헤집는다. 가만히 두어도 괜찮을, 굳이 들추어서 좋을 것 없는 어설프고 부끄러운 과거의 일들.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일부터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먼 과거로 돌아가 기억에서 사라지기 직전의 이야기를 들고서 오는 일. 그리고 그것들을 종이 위에 적어내는 일.
그렇게 글을 쓴다는 일은 자꾸만 과거의 나를 돌아보는 일처럼 느껴진다.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것은 대체로 고통스럽다. 그 안에는 후회와 회한이 가득하다. 드러내고 싶지 않다. 부끄럽다. 숨기고 싶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것들을 꺼내 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왜 가만히 두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를 그 과거의 일들을 파헤치려 드는 걸까.
모르겠다. 알 수 없다. 그저 쓰는 고통보다 쓰지 않는 고통이 더 크다고 말하는 수밖에. 그렇게 더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해 깊고 고요한 바닷속을 다시 어지러이 헤집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몇 권의 책을 낸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다가 막힐 때면 스타일 카운슬의 <It's a Very Deep Sea>를 꺼내 듣고서 과거로 뛰어든다.
다이빙, 다이빙, 다이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