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답장과 몇 개의 동전들

by 이경




<뒤늦은 답장> 中


연휴에 서점에 들러 책 하나를 들고 왔다. 창비 출판사에서 나온 정원 작가의 <뒤늦은 답장>이다.

십 대 청소년의 우울과 방황, 꿈과 사랑 같은 이야기들을 풀어냈는데 책 후반에 등장하는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성호가 모은 동전들이 대단하게 느껴져.'


성호는 주인공 남우의 고등학교 친구인데, 알바를 하다가 악덕 PC방 사장에게서 동전으로 월급을 받은 일이 있다. 훗날 성호는 그렇게 알바를 해서 모은 돈으로 배낭여행인지 세계여행인지를 떠나는데, 그 일을 두고 주인공 남우가 또 다른 친구 재근에게 소식을 알리는 장면이다.


유독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전날 읽었던 한 기사 때문이다. 기사의 내용은 서울 시내버스에서 현금 천 원을 내고 버스를 타는 청소년들 중 절반 정도는 동전 거스름돈을 가져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버스 카드 사용에 익숙해져 거스름돈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귀찮고 부끄럽다는 이유로 잔돈을 받아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기사에 생각이 많아져버렸다. 귀찮고, 부끄러워서라니.


요즘 아무리 화폐 가치가 하락한다 하여도, 직접 돈을 벌지 않는 십 대 아이들이 거스름돈을 마다할 정도인가 싶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부끄럽고 귀찮다는 이유로 거스름돈을 챙기지 않는다는 인터뷰 내용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만화에 등장하는 '성호가 모은 동전들이 대단하게 느껴져.' 하는 이야기가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연휴 저녁 11살 아들 1호에게 기사의 내용을 이야기하며 아들의 생각을 물어보기도 했다. 만약 버스에 천 원을 내고 타서는 거스름돈으로 동전이 나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아들은 당연히 동전을 챙겨서 오겠지만, 백 원짜리는 자기가 갖고, 오십 원짜리는 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으니 애비 책상 위에 있는 동전 저금통에 넣겠단다. 아이고 고마워라...




그러고 보면 나도 동전에 관한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있다. 아마도 지금의 아들 1호 나이 때쯤이었으려나,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리고는 분명 거스름돈 오백 원을 가지고 왔어야 했는데, 오는 길 어디엔가 동전을 흘렸는지 잃어버린 적이 있다. 거스름돈을 묻는 아버지에게 사실 그대로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면 좋았을 텐데, 별거 아니지 않냐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아버지에게 크게 혼났던 일이다. 그 오백 원 동전 하나에도 아버지의 고달픈 노동이 있었을 테니 어리고 철이 없었어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으면 안 됐던 건데.


어릴 때 동전도 소중하다는 걸 깨달아서였는지, 성인이 되고서 가끔 택시를 탈 일이 있어도 거스름돈을 하나하나 모두 챙겨서 나왔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과거 어릴 적 아버지에게 동전 때문에 혼이 났던 기억과 함께 조심스러워하는 내 성격도 기인하는 것 같다.


혹여나 잔돈을 마다하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택시 기사분의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의 마음이 들었달까. 지금 생각하면 나는 지나치게 타인의 마음을 여러 갈래로 예상하고 신경 써오며 살아왔던 거 같기도 하다. (국내에는 팁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 나가서도 팁은 얼마를 줘야 적정한지 고민하는 타입...)


택시를 타고서 처음으로 잔돈을 받지 않았던 것은 동년배의 랩 듀오인 다이나믹 듀오의 5집에 실린 <잔돈은 됐어요>를 듣고 나서였다. 나와 또래의 이들은 이제 택시를 타고서 잔돈을 마다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싶어져, 가끔 택시를 타고서 몇 백 원의 거스름이 나올 때면 그들을 흉내 내곤 했다. "잔돈은 괜찮습니다." 하고서.


그때마다 택시 기사분들은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었으니, 정말 나는 타인의 마음을 지나치게 신경 써오며 살아왔구나 싶어 진다. 이렇게 동전을 마다하게 된 게 서른 가까이 되어서의 일이었고, 또 그렇게 마다한 몇 개의 동전에도 누군가는 고마움을 표시하였으니, 요즘 동전을 받아가지 않는다는 십 대를 심정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동전과 관련된 음악 하나를 더 이야기하자면 공일오비의 첫 앨범에 실린 <텅 빈 거리에서>에 나오는 동전도 아낀다. 지금의 목소리와는 많이 다른 미성의 윤종신이 부른 곡이다.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동전 두 개를 들고서 사랑하는 이에게 차마 전화 걸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그 장면에는 애절함과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한때 동전 두 개에는 이처럼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또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시간을 선사하기도 했는데. <텅 빈 거리에서>의 화자가 들고 있는 동전이 백 원짜리인지 십 원짜리인지, 지금 동전을 마다하는 아이들에겐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일런지도 모르겠지만.



뒤늦은답장.jpg 정원 만화 <뒤늦은 답장>


여하튼 정원 작가의 만화 <뒤늦은 답장>은 추천작이다. 작가의 전작이 <올해의 미숙>이라는데, 아직 읽어보질 못했다. 작가의 전작도 주문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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