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토요일 저녁에 잠깐 나갔다 온 것 빼고는 대체로 먹고 마시고 누워만 지냈다. 오랜만에 넷플릭스를 켜고는 <재벌집 막내아들> 3, 4, 5편을 연속으로 본 것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주말이었다. 뭐라도 해야지 싶어서 하는 게 고작 sns에 글쓰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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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초반, 연대생도 아니면서 신촌에 가서 자주 놀았다. 뮤직박스가 있던 술집 레지스땅에서 음악을 듣고 맥주를 마시며 휘청휘청하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모르던 사람들과도 말을 섞게 된다. 그중엔 진짜 연대생이던 K형도 있었다.
K는 나한테 꽤나 살갑게 대해준 형이었는데 어느 날엔 "경화야 너 나중에 나랑 외국에 트렉킹이나 좀 하러 가자." 하는 말을 했었다. 배낭여행이 인기 있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나는 그때 '트렉킹'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는 거다. 지금이라면야 스마트폰을 켜고서 단어를 검색해보고는, "아아, 트렉킹 말씀이십니까, 그것 참 좋겠군요." 하고 아는 척하겠지만, 그때는 눈치껏 단어의 뜻을 유추해야만 했다. 시부랄 트렉킹이 대체 뭐야. 내가 하이킹은 아는데.
여하튼 K와는 가끔 그렇게 술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였다. 동생이라는 이유로 가끔 술도 얻어 마시고. K와 친분을 쌓아가던 어느 날, K 옆에서 맥주를 홀짝이다 보니 K의 얼굴이 연예인 누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 연예인 누구누구 닮은 거 같아요."
그러자 K는 정색을 하며, "경화야 미안한데 나는 누구 닮았다는 이야기 존나 싫어해." 했다.
미친 인간. 나름 칭찬이라고 생각한 멘트에 이렇게나 정색을 하다니, 아이덴티티가 대단한 인간이네, 싶었다. 한마디로 재수가 없었다. 누구 닮았다는 말이 그렇게나 기분 나쁠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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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처음으로 책을 내봐야지 생각하고 출판사에 음악 에세이를 투고하고서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가 생각난다는 피드백을 두세 번 들었다. 그중 누군가는 아예 <보통의 존재>를 벤치마킹해서 책을 내보는 것도 좋겠다며 꼭 읽어보라는 말을 해주었다.
내가 쓴 글이 다른 누군가의 글을 닮았다는 이야기에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마음이 들던 그때 나는 오래전 K를 떠올렸던 거 같다.
사실 그때까지도 이석원의 책은 읽어보지 못한 상태였다. 2019년 음악 에세이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첫 책을 내고서 지인이 선물해준 이석원의 또 다른 책을 통해 그의 문장을 처음 접했다. 좋네. 잘 읽히네. 재밌네. 그게 이석원의 책을 보고서 느낀 마음이었다.
보면서 나와는 이런저런 공통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와는 딱 10살 차이. 첫 책을 낸 나이 (39세)가 같다는 것. 외모 컴플렉스가 있고. 그리고 또 이런저런 문장을 통해 생각 또한 좀 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이라면 이석원이 나보다 수천 배 유명하고, 책을 수천 배 더 많이 팔았다는 것.
내가 쓴 글이 누구와 닮았다면, 그 '누구'의 글을 읽으면 되지. 굳이 내 글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내 글이 누굴 닮았다는 이야기가 싫어지게 되었고, K의 불같던 정색도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4년이 지나, 음악 에세이 원고는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해서 다섯 번째가 되어서야 책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부러 읽어보지 않았던 <보통의 존재>를 지난 토요일 서점에서 들고 와 이제야 페이지를 열어본다.
닮았나. 모르겠다. 진짜. 아몰랑. 글이라는 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모두가 좋아하고 훌륭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것. 책을 네 종 낸 이제는 이석원보다 내 글을 더 좋아해 줄 사람이 전국에 다섯 명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님 말라지.
요즘엔 출판사 편집자님과 음악 에세이의 책 제목이나 표지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원고 상태의 글이 책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드는 이제야 뭔가 숙제하는 마음으로 <보통의 존재>를 읽는다. 예전에 비해 가벼워진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