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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Dec 20. 2022

모니터 안에서 모두가 웃고 있었다


줌 첫경험한 이경이경




며칠 전 처음으로 화상회의 줌을 접속해봤다. 개인 노트북도 없는 미천한 글쟁이인지라 초딩 4년 아들 1호의 노트북을 훔쳐다가 사무실에 세팅해놓고, 이참에 줌 아이디도 만들었으나 어째서인지 접속은 아들 아이디로 되어 방송 전 대화명을 바꿔야만 하기도 했다.


책을 내고서 유튜브 방송이나 인터뷰 등 몇몇 곳에서 얼굴을 보이며 활동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복면작가' 행세를 하며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이유. 1) 못생겨서 2) 못생겨서 3) 못생겨서...


이번 줌 접속은 지인 작가님과 다음 책 출판사 대표님의 제안으로 하게 되었는데, 고백하자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접속을 하게 되었다. 안 그래도 흥분하면 말문이 막혀버리는 어버버 눌변인데 난 뭘 믿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줌에 접속하여 떠들 생각을 했던 걸까. 그러니까 나는 일종의 '결'을 생각했던 것 같다.


글쓰기라는 거 가르치고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거라 믿지 않으며, 글쟁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자화자찬하는 것도 경계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에게 사람들이 얻어갈 게 뭐가 있을까. 줌에 참여하는 이들은 종이책 기준으로 1종 이상 출간하거나 계약한 작가 커뮤니티 사람들이라고 했다. 대부분 두 번째 책을 준비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아니, 도움이 되기나 할까. 나랑 결이 좀 안 맞는 분들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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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책이었던 <난생처음 내 책>과 네 번째 책이었던 <작가의 목소리>에 대해 40분가량 이야기하고서 질문을 받고 답을 달라는 진행자의 말에, 그러마 했지만 20분 정도 떠들고 보니 할 이야기가 뚝 사라져 버렸다. 역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탓이다. 결국 조금 이른 시간부터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책 홍보는 어떻게 해야 하고, 퇴고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내가 똑같이 고민해오던 질문을 받으면서 나는 줌에 접속하기 전 생각했던 이들과의 '결'이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들 글쓰기로 고민하는 분들이구나. 책 쓰기로 힘들어하는 분들이구나.


책이 알려지는 것에는 내가 글을 잘 쓰느냐 못쓰느냐와는 상관없는 운의 영역이라는 대답에 누군가는 안도를 했을 테고, 누군가는 허탈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잖습니까. 지금 저에게 책 홍보를 물으시는 건가요. 일단 제 책도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질문과 답을 하는 사이 머릿속에 새로이 떠들만한 이야기가 생기면 프리스타일로 내뱉기 시작했다. 회의 중반쯤엔 줌에 참여한 이들이 1종 이상의 책을 계약했거나 출간했다는 게 생각나 일본의 에세이스트 마스다 미리의 책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마스다 미리가 중학생이던 시절 그녀의 은사가 들려주었다는 말. "누구나 책 한 권은 낼 수 있다. 자기 인생을 쓰면 되니까. 두 번째부터가 진짜 작가야."라는 말.


마스다 미리의 선생님이 했다는 두 번째 책부터가 진짜 작가라는 말은 어쩐지 나에게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했던 말이다. 나는 줌으로 모인 작가 커뮤니티 분들에겐 마스다 미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요즘에는 책 하나 내고서 작가라며 으스대는 분들 많잖아요? 물론 저는 책을 4권 냈고 내년이면 다섯번째 책이 나옵니다만. 그러니 여러분들도 어서 두 번째 책을 내세요. 마음에 있던 어떤 이야기는 입 밖으로 뱉었고 어떤 이야기들은 함구했다.


어떤 꼭지를 책에 넣고 빼야 할지 고민하는 분에겐 '건강한 고민'이라는 말씀을 드리기도 했고, 출간 계약을 해놓고 퇴고 과정을 힘들어하는 분에겐 '책을 만들 에너지' 정도는 남겨놓고 퇴고하라는 말씀도 드렸다. 그렇게 질문을 받고 답을 하다 보니 어느새 화상회의 시간은 예정되었던 한 시간을 훌쩍 넘겨 80분 가까이 지나고 있었다.


그중 가장에 기억에 남는 질문은, 언제쯤 책을 내길 잘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죠. 오늘은 제가 주인공 아니겠습니까. 오늘 같은 날은 제가 쓴 책 이야기를 하며 마음껏 잘난 척해도 되는 날이잖아요. 오늘 같은 날이 책을 쓰기 잘했다고 생각되는 날입니다.


생각하면 신기한 경험이다. 줌에 참여한 열댓 명의 사람들 모두가 음소거를 하고서, 오로지 내 노트북 마이크만 켜져 있던 상황.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고, 주목받는 기분. 그렇게 혼자서만 떠드는 그 적막함 속에서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수차례 동공이 흔들리기도 했다. 처음 경험해보는 시간이라 많이 허둥대고, 중간에 멍청한 전두엽을 돌리는라 사운드도 좀 비고 했을 텐데, 모든 시간이 지나고 줌에 참여한 분들을 박수를 쳐주셨다.

 

줌 회의가 끝나고 몇몇 분들이 보내주신 방송 당시의 사진을 보았다. 신기하게도 모니터 안에서는 하나같이 모두가 웃고 있었다. 모두 나를 보고서 웃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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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눌변은 차치하고서, 그만큼 제가 호감형 인간이라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결이고 뭐고 간에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척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다능...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던 나 놈을 규탄한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꼭꼭 열심히 준비해서 보다 열심히 잘난척하고 책 홍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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