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소개>
어제 출판사에 다음책 저자소개 문구를 넘겼고 OK를 받았다. 지금까지 냈던 책 중 가장 짧은 저자소개가 될 것. 사실 첫 책을 낼 때부터 저자소개에서 주절주절 하고 싶지 않았지만, 무명 글쟁이의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심플함이 불친절함으로 느껴질 수 있을 테니까. 여하튼 거듭 책을 낼수록 저자소개란은 점점 짧게 쓰고 싶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2. <그러니까...>
최근에 한 서평가와 페친을 맺었는데 과거 그가 쓴 글을 찾아보았더니,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는 '갑자기'라는 단어가 200번 이상 나오고, 한강의 단편 <회복하는 인간>에서는 '모른다'라는 말이 수십 번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글쟁이는 특별한 의도가 없는 한 자주 쓰는 중복 표현을 쳐내기 마련인데, 도스토예프스키 aka 도끼 선생이나 한강에게는 독자에게 무언가 전달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었던 거겠지.
출판사에 프롤로그, 에필로그, 저자소개까지 모두 보내고 OK를 받은 상황이니 더 이상 내게 남은 지면은 없다 싶어, 전체 원고나 한번 후루룩 살펴보고, 눈에 드러나는 오류나 잡아보자 하는 마음에 원고를 보았더니 유독 자주 보이는 단어가 있다.
그러니까, 다음에 나올 음악 에세이에서 내가 자주 쓴 단어는 '그러니까'라는 단어인데, 십만 자의 글자 중에서 대략 마흔 번 정도를 썼다. 꼭지수가 딱 마흔이니 퍼센티지로 따지면 거의 매꼭지 한 번씩은 쓴 셈이다.
도끼 선생이나 한강처럼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일부의 '그러니까'를 지워볼까 어쩔까 저쩔까 갈까 말까 묻고 더블로 갈까 하다가 결국엔 하나도 지우지 않고 모두 살려두기로 했다.
국어사전에서 보여주는 '그러니까'의 뜻은 '앞의 내용이 뒤의 내용의 이유나 근거 따위가 될 때 쓰는 접속 부사'
그러니까 나는 이유나 근거를 대며 계속해서 어떠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까'와 비슷한 표현으로는 '그러니', '그리하니까, '그러하니까', '그러하므로', '그래서 말입니다', '그랑께' 등등이 있겠으나 나는 유독 '그러니까' 만이 사랑하였다.
원래 이런 건 도스토예프스키의 '갑자기'나 한강의 '모른다'를 집어내듯 서평가가 찾아서 말해주어야 간지가 나는 거지만, 무명의 글쟁이 이경은 출간도 전에 자수하여 광명을 찾는 것이다.
그러니까 책이 나오면 많이 읽어달라 이겁니다, 네네. 이 글에 쓰인 '그러니까'는 모두 의도가 있다 이겁니다, 네네.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오늘의 추천곡은, 십센치(10cm)의 <그러니까...>로 하겠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