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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Jan 27. 2023

서점을 하고 싶다, 이왕이면 글쓰기 클래스도.


다음 책은 이것저것 다해놓고 표지에서 한발 나아가질 못하면서 정체 중이다. 그래도 2월 중순에는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회의적이기도 하다. 요즘엔 정말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이니까. 책이 나오면 10부씩 가져가던 교보문고 광화문점도 몇 년 전부터 7부씩 가져가더니 이제는 5부 정도로 초도 배본 숫자를 줄인 듯하다. 마치 결혼식 축의금 맞추듯 그래도 홀수로 가져가긴 하네. 이런 추세로 가다간 언젠가는 3부로 줄어드는 날도 오려나. 어쨌든 그렇게 매대에 책이 깔리더라도 2~3주 지나면 대부분은 책들의 무덤인 서가로 가게 된다. 옛날에는 책을 내지 못해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더라면, 이제는 내가 낸 책들이 내 목을 조르는 기분이다. 나는 살면서 몇 번이나 책으로 죽게 될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아버린 듯하다. 책임져야 할 처자가 없었더라면 분명하게 책방을 열고 싶다. 내가 읽었던 몇몇 책들을 큐레이션 해놓고는, 한쪽 매대에는 내가 쓴 책들만 모아다가 팔아야지. 그렇게라도 해야 내 글을 믿어준 출판사에 보은이 되겠다. 책만 팔아서는 돈이 되지 않을 테니, 글쓰기 클래스도 열어야지. 어느 해 연남동의 한 독립서점에 들렀을 때 실제로 글쓰기 모임이 열려 어깨너머로 그들을 지켜본 적이 있다. 대부분은 여성들이었고, 단 한 명의 남성이 있었던가. 글쓰기 모임의 분위기가 저렇게나 화기애애하고 좋을 수가 있구나 싶어 나는 책을 구경하면서도 계속 그들을 지켜보았다. 혼자서만 책 구경을 하는 내가 조금은 뻘쭘하게 느껴져 금방 나와버리긴 했지만, 아마 서로가 쓴 글을 읽고서 이러쿵저러쿵 합평도 하는 거겠지. 독고다이로 글을 써온 나는 가끔 합평 자리를 상상하곤 한다.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읽고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댄다면, 좀처럼 포커페이스를 가지지 못하는 나는 손톱을 물어뜯고 다리를 흔들다가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결국, "그만해 미친놈아!" 소리 지르면서 인성 파탄자로 손가락질받겠지. 그러니 서점을 열면 내가 주도하는 글쓰기 클래스를 열어야지. 기간은 12주가 적당하겠다. 첫 4주의 수업교재로는 <작가의 목소리>를 써야지. 중간 4주의 수업교재로는 <난생처음 내 책>이 적당하겠다. 마지막 4주의 수업교재로는 <작가님? 작가님!>을 쓰는 거야. 그렇담 나는 내가 쓴 책 4종 중에 3종을 글쓰기 수강생들에게 팔아먹을 수 있는 거야. 서점을 하고 싶다. 이왕이면 글쓰기 클래스도 열어서. 책들의 무덤에서 같이 죽자며 내 목을 조여 오는 책들을 해방시켜주고 싶다.


검정치마의 <Min(미는남자)>를 들으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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