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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Jan 28. 2023

무감각


그냥 두서없는 이야기.


요즘은 잠들기 전 유튜브를 통해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 '시네마 지옥' 코너를 조금씩 보고 잔다. 영화는 잘 보지도 않으면서 영화 평론가들이 영화 이야기하는 걸 보는 건 재미있달까.


나이가 가장 많은 전찬일과 미치광희 최광희, 라이너, 거의없다 네 사람의 영화평론가들이 나이 같은 거 따지지 않고 치고받으며 각자의 스타일대로 비평하는 게 나름 꿀잼이다. 다들 조금씩 미친 사람들 같아.


개중에 가장 젊은 '라이너'는 자기 이름으로 소설도 발표한 이력이 있다는데 그 정체가 궁금하기도 하다. 라이너라는 이름 또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서 따왔다고.


그런 작가 마인드가 있어서인지 라이너는 영화 비평을 하면서 특히나 '신파'를 혐오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마치 신파가 들어간 영화는 모조리 까버리겠다는 듯이.


라이너의 그런 신파 혐오에 나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영화를 보다가 억지로 관객을 울리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장면에서 진짜 눈물이라도 나올려치면 뭔가 패배한 느낌까지 든다. 으으, 이런 고민 없이 만든 신파에 눈물을 흘리다니, 으으으으 하면서.


글쓰기도 마찬가지인데 누군가를 울리는 글을 쓰는 건 비교적 쉽다. 소설에서든 에세이에서든, 사람이 슬픈 감정을 느끼는 지점은 다들 비슷하니까. 하지만 누군가를 웃기는 일은 너무 어렵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유머 코드와 웃음 포인트는 다들 제각각이기 때문에.


산울림의 김창완이 쓰는 가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랑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을 말하며, 대놓고 슬픔을 노래하지 않아도 슬픔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김창완 스타일의 정수가 나는 산울림의 <무감각>에서 보인다고 생각한다. 듣고 있으면 마치 단편 소설 하나가 그려지는 이야기. "울어! 울어! 나 지금 너무 슬퍼!" 하지 않고 담담한 일상을 노래하면서도 끝에 가서는 청자를 울리고야 마는 서글픈 이야기.


이별 앞에서 이별인 줄 몰랐던 <무감각>의 화자처럼 나도 좀 무감각해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슬픈 일을 떠올리면 슬프고, 웃긴 일을 떠올리면 웃기고, 아픈 일을 떠올리면 아프고 그렇다. 아직은.


몇몇 책을 쓸 때는 이런 사사로운 감정을 모두 버리고 무미건조에 가까운 글을 쓰려고도 하지만 이 남아있는 감정을 털어내는 일이 참 어렵다.


그래도 음악 에세이 원고를 미리 본 누군가가, 글에서 억지로 위로를 전하는 것도 아닌데 위로를 받았고, 슬픔을 말하지 않았는데 슬픔이 느껴진다고 말해주어 고마웠다. 내가 종이 위에 억지 신파를 끄적이진 않은 것 같아서.


산울림 <무감각>을 들으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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