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Jan 31. 2023

말일과 아무 말



1. 말일이다. 말일엔 늘 힘들다. 힘드니까 시간을 내어 글이나 써야지. 이렇게 힘들 때일수록 글을 쓰는 사람이라니. 내가 이렇게나 글쓰기를 사랑한다. 주절주절. 전두엽이 힘내는 대로... 주절주절... 블라블라...


2. 음악 에세이 출간되면, 음악 에세이 하나 더 써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했다. 요 며칠 음악 들으면서, 무슨무슨 음악 들으면서 쓴다... 하는 글을 써서 올렸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아. 음악 들으면서 글 쓰는 건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하던 거.


문제는 사람들이, 무명 글쟁이가 무슨 음악을 들으며 글 쓰는지 그게 뭐 궁금하겠냐는 거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기가 사모은 티샤스 쪼가리에 대해 끄적여도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3. (신인)무명 작가가 출판사에 투고할 때 가장 서러운 게, "너 님 유명함?" 하는 거다. 똑같은 글을 써도 유명인이 쓰면 출간될 확률이 높아지는 더러운, 하지만 지극히 당연 출판의 세계... 근데 나는 책을 넷이나 냈는데도 왜 무명인가... 헤헷. 모르겠넹...


4. 언어가 사회를 만든다, 뭐 이런 이야기 있잖나. 그래서 사람들이 계속 뭔가 더 괜찮은 단어를 만들려고 하고... 내가 이거 요즘 들어 가장 크게 느낀 단어가 '라이더'다.


건물 1층에 족발집이 있는데 전에는 문에 '배달 기사분은 밖에서 대기하여 주십시오.' 라고 써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라이더분은 밖에서 대기하여 주십시오.'라고 쓰여있다.


배달 기사에서 라이더라고 바꿔 쓰니까 뭐랄까, 되게 있어 보인달까. 배달부, 배달기사, 배달원, 배달꾼, 배달맨 뭐 사실 다 똑같고 비슷한 직업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어쩐지 '라이더'라고 하니 뭔가 정말 있어빌리티 한 단어가 아닌가.


물론 한편에서는 그들을 가리켜 '딸배'라는 혐오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라이더와 딸배라는 단어 사이에서, 아 그렇다, 정말 언어가 사회를 만든다, 하는 걸 느끼는 것이다. 더 얘기하면 길어지니까, 그냥 대충 제 전두엽에서 이런 거 생각하고 있다, 이겁니다, 네네.


5. 가끔 사람들이 고무인간이나 터미터네이터 T-1000같이 생겨먹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늙지 않고 탱탱하게 팽팽하게 어디 다치면 스르륵 복구가 되면서, 그렇게 젊어서나 나이 들어서나 똑같은 모습으로 살다가 딱 100번째 생일이 되는 날 잠들면서 스르륵 눈 감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 환상 몽상 상상 이상 백두산은 유현상.


나이 드니까 막 주변에 아픈 사람들도 많아지고.


6. 지난 주말에는 서점에서 책 두 권을 들고 왔다. 들고만 오고 읽지는 않는다. 책이란 원래 사놓고 그냥 그렇게 지켜보는 물건 아니겠습니까.


하나는 김영민 교수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김영민 하면 유명한 동명의 작가가 두 사람 있지 않나. 한 사람은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책 자주 내시는 철학박사이고 한 사람은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서울대 교수. 나는 후자의 김영민 책만 읽어봤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제목만 보고서 전자의 철학박사 김영민인가 하였으나 역시나 이번에도 후자의 책이었다.


다른 하나는 일본 소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들고 왔다. 지금까지 3페이지 읽었다. 사실 이런 책은 제목만으로도 충분한 책이 아닌가...


7. 며칠 전에 페북 피드를 보는데 한 작가님이 강연을 하시다가 쓰셨던 글의 의도를 묻는 질문을 받고서는 당황스러워했다는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글에는 의도가 있을 텐데, 그 의도를 물었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아무런 의도가 없는 글'에도 아무런 의도가 없으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이니, 정말 대부분의 글에는 이런 의도이든 저런 의도이든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글쓰기의 어려움 중 하나라면 이 의도를 독자들이 몰라줄 때인데, 사실 몰라주는 것보다는 완전히 헛짚을 때 글쟁이는 살짝 피곤해지는 것이다.


글쟁이가 글을 쓰면서 크게 작정하는 의도 두 가지라면 역시나, 울리고 웃기고자 하는 일인데, 이 경우 글쟁이의 의도와 독자의 반응은 크게 여섯 가지로 나뉠 수 있다.


글쟁이의 의도가 누군가를 웃기려 할 때,

1- 독자가 웃는다.

2- 독자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3 - 독자가 운다.


글쟁이의 의도가 누군가를 울리려 할 때,

4 - 독자가 웃는다.

5 - 독자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6 - 독자가 운다.


사실, 1, 2, 5, 6 번은 작가의 역량이며 팔자소관이니 때려치우고, 3, 4번이 정말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개개인의 유머 코드가 모두 다른 바 3번 역시 팔자소관의 영역으로 넘겼을 때 역시 제일 곤란한 것은 4번이다.


나 지금 되게 진지한데, 막 우울미가 넘치며 글을 쓰고 있는데 가끔 독자가 깔깔깔 하고 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가끔 이런 상황이 닥치면 어떡해야 하나 싶고...


8. 폐북 계정 만들고 한참 동안 친구가 100명 미만이었다가 최근 들어 페친 300을 넘었다. 뭐 대부분은 유령 계정인 것 같긴 한데, 실제로 친구 많이 없는 아웃사이더라 페친 숫자 300이 좀 감격적이다.


근데 친구가 확 늘어나서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나, 글을 보니까능 대한민국 중년 아저씨들은 왜 이리 미움을 받고 사는 건가 싶고... 나도 약간 분위기 싸한, 말 이상하게 하는 중년 아죠씨들 보면 반응을 어찌해야 하나 싶은데... 페북의 여성 동무들이 중년 남자 까는 글을 쓸 때면, 대한민국 중년 남자로서 뭔가 가슴이 좀 아프고...


근데  요즘 사십 대는 중년 아니졍? 네? 한 오십 대부터 중년으로 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네? 예? 중년 남자 욕하는 페친들이 너무 많아서 중년이고 싶지 않다...


9. 가끔 페북에 막 글 쓰다 보면 맞춤법이 알아서 엉망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는 거 같다. 버근가... 주커버그야... 나랑 싸울래... 투닥투닥... 페북에 글 올리고 이상하게 바뀐 단어들을 원래대로 돌려놓는데 요즘 이 짓을 하고 있으면 눈도 너무 아프고... 아 중년인가...



작가의 이전글 안약을 넣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