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인 것 같지만 한때 패밀리 레스토랑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티지아이프라이데이(TGI.Fridays)도 그중 하나였다. 어릴 때 이곳의 상호를 보고 프라이데이가 금요일인 건 알겠는데 앞에 붙은 TGI는 무얼까 궁금했다. 내가 떼제베(TGV)는 아는데...TGI는 당최 뭐란 말인가.
이 궁금증의 해답은 알켈리(R.Kelly)가 부른 <Thank God It's Friday>를 듣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금요일을 맞아 신에게 감사하다는 뜻이었다. 알켈리가 부른 <Thank God It's Friday>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 아! 금요일이다! 신난다! 놀자! 이런 가사의 흥겨운 알앤비 곡이다.
1995년도에 나온 곡이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주 6일 일하던 시절이다. 토요일에 직장인은 출근하고, 학생은 학교 가던 때다. 주 5일 근무, 교육이 국내 안착한 건 한참 후에 일이니 알켈리가 신에게 감사하다며 노래 부른 금요일이 어색하고 와 닿지 않는 건 당연했다.
아이를 둘 키우고, 큰 애는 내년이면 학교에 간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무얼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왜요?'병에 걸리기 십상이라고 들었지만 다행히 큰 애는 삶에 궁금한 게 많이 없는지 왜요병에 걸리지 않았다. "왜요? 왜요? 그건 왜 그래요? 이건 왜 그래요?" 물어본다면 성심성의껏 대답해주고, 내가 모르는 질문이 있다면 인터넷을 뒤져 찾아볼 마음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아이가 커가면서 이건 꼭 가르쳐줘야지 생각하는 게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패밀리 레스토랑 이용법이다.
"아들아. 패밀리 레스토랑 가면 보통 샐러드 바와 메인 메뉴를 고를 수 있어. 그런데 메인 메뉴를 시키면 샐러드 바는 무료 이용이 가능해. 진짜야. 메인 메뉴 시키면 샐러드 바에 있는 음식 다 갖다 먹을 수 있어. 뷔페야 뷔페. 그러니깐 메인 메뉴를 시키면 눈치 보지 말고 샐러드 바를 이용하라고. 돈 없으면 그냥 샐러드바만 이용해도 돼"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을 이용하던 때에 불행히도 나에게 이런 걸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내게도 첫사랑과 첫 이별의 순간이 있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스무 살 청춘 시절의 데이트라 봐야 뻔하다. 한 끼 5~6천 원 하는 식사와 커피숍, 극장에서 보는 영화만으로도 즐거운 시절이다. 군대 대신 방위산업체에 들어가 월급이란 걸 받기 시작하면서, 이제야 겨우 주머니가 넉넉해지려는 순간 내 첫 연애가 끝나가고 있었다.
내 인생의 첫 연애 스토리를 만들어준 이에게 괜찮은 식사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한창 인기를 끌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우리는 메인 메뉴를 두 개 시켜놓고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스테이크가 나오는 그 순간까지 나는 내 앞에 있던 사람의 눈동자를 바라보지 못했다.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저 내 앞에 놓여있던 고기 써는 칼과 포크만 보고 있었다. 어색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한참을 멍하게. 아니, 멍청하게.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하얗고 넓은 빈 접시를 들고 당당하게 샐러드 바에 넘쳐나던 음식을 담고 먹어야 했다. 유쾌한 웃음을 날리며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우리 앞에 떠다니던 어색한 기운을 음식의 힘을 빌려 없애야만 했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알고 있더라도 그래야만 했다.
패밀리 레스토랑 직원은 우리에게 샐러드 바를 이용해도 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저희 매장 처음 오셨나요?"라는 그 흔하디흔한 친절함도 베풀지 않았다. 나는 스테이크를 굽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몰랐다. 맛있고 멋진 식사를 위해 찾아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우리 사이는 더욱 어색해졌다. "고기는 어떻게 구워드릴까요?"라는 질문에 내 앞에 있던 사람의 대답은 아마도 "미디엄이요" 였겠지. 레어가 다 뭐람, 미디엄이 다 뭐람, 웰던이 다 뭐람. 난 그런 거 몰라요. 그냥 정성껏 구워주세요. 어린 시절 고기의 굽기가 각각 다르다는 걸 나는 몰랐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색한 순간을 줄여나가는 일 같다. 어린 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은 나이 먹어가면서 체험하고 터득하면서 익숙해진다. 첫사랑과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마주 앉아 있던 그 시간은 내게 악몽처럼 느껴진다. 한없이 어색한 기운이 흘러넘치던 시간이다. 그때 샐러드 바를 이용해도 괜찮았다는 걸 알았더라면 어색했던 그 날의 공기는 조금 더 맑았을 텐데.
이제는 TGI.F의 TGI가 무엇의 약자인지 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법을 안다. 고기의 굽기를 안다. 젊은 청춘의 시절 알지 못해 어색해야만 했던 일은 이제 없다.
지금의 아내가 된 사람과 단둘이 칵테일을 시켜 먹은 곳은 부평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연애를 하기 전 그곳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는 시간이 흘러 연인이 됐고 가족이 됐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음료만 시켜도 된다는 것을 그때는 알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역시 패밀리 레스토랑은 패밀리와 가야 하는 건가 싶다. 달리 패밀리 레스토랑이겠는가. 3인, 4인, 다인의 가족이 모여 음식을 넉넉히 시켜놓고 오손도손 먹을 수 있는 식당이 패밀리 레스토랑 아닌가.
"아들아. 패밀리 레스토랑 가서 메인 메뉴를 시키면 샐러드 바를 이용해도 돼.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지? 그냥 엄마랑 아빠랑 너랑 동생이랑 다 같이 한번 가자. 가서 아빠가 알려줄게. 너는 그저 접시를 들고 따라오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