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구원의 천사를 만나고 싶다

출판사 대표(편집자)를 만났지만...

by 이경


원고를 쓰고 투고를 한다. 몇 번의 계약 제안이 있었고, 미팅 제안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계약을 맺지는 못 했다. 돌이켜보면 굴러온 기회를 나 스스로 뻥 걷어찬 적도 있고, 출판사의 내부 사정으로 뒤늦게 계약이 취소된 적도 있다. 이런 걸 '운명이다'라는 한마디로 퉁쳐버려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3주 전에 한 신생 1인 출판사에 투고를 했더랬다. 투고란 걸 처음 했을 때에도 그 출판사의 존재는 알았지만 투고는 하지 않았었다. 해당 출판사에 투고를 망설였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신생 출판사다 보니 출간 종수가 많지 않아 출판사의 출간 방향에 부합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1인 출판사 사이에서 꾸준히 사업을 영위해 나갈지도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아무리 시각적 안목이 없다지만, 출판사에서 나온 책의 표지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늦게나마 해당 출판사에 투고를 했던 이유는 그 출판사에서 출간한 저자들의 후기에서 좋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계약 후기를 보니 하나같이 출판사 대표의 인간미에 감동하여 계약을 하고, 책을 냈다. 출간이란 것이 사람이 모여하는 작업이다 보니 나 역시 그 인간미가 궁금했다. 무엇보다 내 원고는 음악 에세이였다. 출판사 대표의 글을 보니 남들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출판사 대표가 어느 날 갑자기 출판사를 차린 게 아니라 이십여 년간 편집자로 살아왔다는 사실도 내게는 큰 믿음과 신뢰로 다가왔다.


결국 난 해당 출판사에도 투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투고 메일을 보내고 메일을 확인한 지 50분 만에 답장이 왔다. 서울에 살면 내일이나 모레, 글피에 미팅을 하자는 제안. 생각보다 너무 빠른 답장과 미팅 제안에 얼떨떨했다. 기분 좋은 얼떨떨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50분이면 내가 보낸 원고를 아무리 속독하였어도 반 정도 읽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답장을 보냈다. 보내드린 원고가 용두사미로 읽혀선 안 될 테니 미팅을 일주일 미루자고. 출판사 대표는 수긍했고 우리는 일주일이 지나 만났다.


아스팔트가 타들어 갈 것만 같은 뜨거운 날이었다. 약속 장소는 백화점 1층에 있는 커피숍이었다. 먼저 가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는데 한낮임에도 커피숍엔 자리가 없었다. 나무로 만든 길쭉한 모양의 테이블 가장 구석 자리에 자리가 나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앉았다. 출판사 대표가 오면 마주 보고 앉아 얘기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한 여성이 내 앞에 앉았다. 보통 "여기 자리 있나요? 앉아도 되나요?" 물어볼 법도 한데... 아무리 내가 존재감 없는 닝겐이라지만 너무 한 것 아닌가. 허허.


그렇게 이름 모를 여성과 어색하게 한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출판사 대표가 왔다. 우리는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한참을 걸어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술을 파는 허름한 맥줏집에 자리를 잡았다.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이라면 1인 1음료는 해야 할 것만 같은 가게 분위기. 결국 나는 미리 주문했던 커피 한 잔에 출판사 대표가 사준 커피를 받아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출판사 대표와 투고자의 미팅 자리. 테이블엔 커피가 세 잔이었다.


출판사 대표는 누가 봐도 '어른'의 느낌이 났다. 출판사에서 출간했던 저자들의 후기대로 믿음이 갔고 인상도 좋았다. 출판사 대표는 투고자에게 미팅을 제안했을 때 원고를 다 읽고 만나자고 말한 이는 내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내 글 때문에 출판사가 망해선 안될 것 아닌가. 처음 미팅 제안 메일을 받았을 때 내 마음속에서는 장기하가 살아나 "우리 지금 만나"라고 노래 부르고 있었어도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낮의 맥줏집에 앉아 두 시간 정도를 이야기했다. 대표는 나에게 본인이 쓴 책을 포함하여 출판사에서 냈던 책 네 권을 선물로 주었다. 미팅 전에 출판사 대표의 생각을 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출판사 대표의 저서는 이미 사서 읽어본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 선물로 줄게요." 그렇게 책 선물을 받고 커피도 얻어 마시고 내 원고에 대한 편집 방향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출판사 대표는 출간을 위해 몇 가지 편집 방향을 제시했고 나는 동의했다. [소년의 레시피]를 썼던 배지영 작가는 내게 "편집자의 방향은 옳다"라는 얘길 해준 적이 있다. 책 한 권 내보지 못 한 무명의 저자에게 미팅을 제안하고 출간 방향을 제시해준 것만으로도 나는 고마웠고 따르기로 했다. 내가 썼던 원고의 일부 꼭지를 수정해서 보내면 편집을 하여 다시 나에게 보내주기로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출판사 대표는 내게 우선 한 꼭지의 글을 수정하여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하나는 정 없을 것 같아 나는 두 꼭지의 글을 수정, 보강하여 출판사에 보내주었고 다음날 출판사로부터 메일이 왔다. 메일 속 첨부파일은 PDF. 어떤 내용일지, 마치 복권을 긁는 듯한 기분으로 첨부 파일을 열어봤다. 두둥.

PDF 파일 속 내 글은 책의 본문 형태를 띄었다. 한글로 썼던 내 원고가 마치 전자책을 읽는 듯한 판형의 파일이었다. 그런데 글이 생경했다. 그게 가장 문제였다. 분명 내가 썼던 글임에도 내가 쓴 글 같지가 않았다.


내가 받은 파일은 일반적인 교정, 교열의 범주를 벗어나 윤문, 윤색되어 있었다. 내가 의도했던 글의 구성과 구조가 망가져 있었다. 문장의 순서가 바뀌었고, 심지어 내가 쓰지 않은 문장도 추가되어 있었다. 무덤덤한 문체로 써 내려갔던 글은 편집자의 손을 거쳐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다. 내가 느끼지 않았던 감정들이 글 속에서 피어나 깝죽대고 있었다. 아무리 다시 읽어보아도 내가 쓴 글 같지가 않았다.


출판사 편집자가 내 글을 수정하여 보내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기에 주변에 자문을 구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자기계발서나 경영서 같은 경우 편집자의 윤문, 윤색이 흔하지만 에세이는 저자의 문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편집을 한다고 했다. 에세이를 냈던 한 작가 역시 출판사에서는 자신의 글을 거의 손대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출판사 대표는 저자의 문체를 바꾸는 행위에 "감히, 어떻게"라는 심정으로 편집을 한다고 했다.


내겐 출간 계약 제안이 오간 소중한 기회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순 없었다. 이렇게 많은 수정이 되어, 내가 쓴 글 같지 않은 책이 나온다한들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편집 방향의 의견을 전달했다. 이런 식의 수정은 내게는 의미 없음을 출판사 대표에게 전했다. 출판사 대표는 내게 사과했고 일하는 스타일이 달랐음을 인정했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일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십여 년간 편집일을 해왔다는 출판사 대표의 편집이 나는 아쉬웠다. 그가 근무했다던 이전 출판사의 출간 목록을 확인해봤다. 경제경영서, 대학교재, 전문서적, 사회과학. 그리고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했던 장르는 '수험서/자격증'... 그 속에 에세이는 단 한 권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해오던 대로, 습관처럼 문장을 고쳐 나갔을 것이다. 에세이 저자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문체보다는 명확하고, 정확한 팩트를 전달하려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출판사 대표님. 사람은 좋았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내 아무리 무명의 저자라지만 글에 담긴 내 의도와 문체, 스타일을 잃고 싶지 않았다. 고유의 문체마저 사라져 버린 무명 글쟁이의 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저자의 감정이 아닌 편집자의 감정이 들어간 문장이 아무리 예쁜 책으로 나와도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소설]을 읽는다. 그러니까 제임스 미치너라는 소설가가 쓴 [소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는다. 소설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의 시선이 담긴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속 소설가의 이름은 루카스 요더다. 루카스 요더는 자신의 편집자 '이본 마멜'을 가리켜 '구원의 천사'라고 부른다. 나도 구원의 천사를 만나고 싶다. 내 문체를 임의대로 바꾸는 편집자가 아닌, 원 글을 소중히 여기고 꼼꼼한 교정, 교열과 더 나은 글이 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해 줄 편집자. 그야말로 내 글을 구원해줄 천사와 같은 편집자를 만나고 싶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속 편집자 '이본 마멜'의 파트에서는 투고 원고가 책으로 나오는 경우는 900건 중 하나라고 한다. 퍼센티지 환산을 하면 0.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라는 극악의 확률이다. [소년의 레시피]를 썼던 배지영 작가는 투고 원고가 책으로 나올 확률은 1% 정도라는 출간 후기글을 썼다. 0.1 퍼센트든 1퍼센트든 가능성이 크지 않은 확률인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투고를 한다.

구원의 천사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기 때문이다.




제임스 미치너 [소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투고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