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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를 들으며 울던 밤

by 이경






그날 저녁 아내는 어쩐지 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다. 퇴근길에 집 앞 봉구비어에 들러 해당 매장에서만 판다던 닭날개를 사들고 집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이미 잠이 든 늦은 시간. 아내와 티비를 보며 치킨을 뜯었다. 양념이 맛있게 배어있어 손가락을 쪽쪽 빨며 티비를 보는데 박정현이 노 부르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한 도시에서 버스킹을 하는 [비긴 어게인]이었다. 5월이 막 저물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박정현이 부른 노래는 1971년 돈 맥클린(Don Mclean)이 발표했던 <Vincent>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노래한 곡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빈센트의 삶이란 게 그렇다. 살아생전에는 미친 사람 취급받으며 인기도 모르고 살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서야 천재로 불린 사람. 돈 맥클린의 <Vincent>는 그런 모습을 노래한다. 이제야 우리는 당신을 이해하노라고.


박정현의 노래에 노랫말이 자막으로 따라 나왔다. 곡이 어느 정도 흐르고 'Artist's loving hand'라는 가사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Artist'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감정이 요동친 것이다. 아내에겐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손가락에 묻은 치킨 양념을 씻는 척하며 주방 싱크대에 물을 틀어놓고는 그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티비 앞에 돌아와 앉았을 때 눈시울이 붉어진 내 모습을 보고 아내는 물었다.


"울어? 왜 울어?"


앞선 스승의 날이던 5월 15일. D출판사 대표님은 투고 원고에 답장을 주었다. 답장 메일에는 '글이 참 좋네요'라고 적혀있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투고자의 마음을 흔드는 법을 배우는 걸까. 어쩜 이런 날에 맞춰 답장을 보내는 건가 싶었다. 내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을 만큼 짧지만 감동적인 문장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5월 22일 D출판사 대표님은 내게 두 번째 메일을 주었다.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좋은 글입니다.'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예술이라고 했다던가. <Vincent>를 들으며, Artist라는 단어를 보고서 눈물이 난 까닭은 나 역시 그동안 많이도 외로웠기 때문이다.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조각을 빚던 혹은 사진을 찍던, 노래 부르던, 곡을 쓰던 자신의 창작물을 이해하고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다면.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이뤄지는 그 모든 행위는 자기만족이 아닌 이상 그저 외로울 뿐이다.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봐 주던 종자기가 있었듯이, 빈센트 반 고흐에게 동생 테오가 있었듯이. 내게도 내 글을 알아봐 줄 그 누군가가 그토록 필요했고 이제는 그런 사람이 생겼다는 생각에 그간의 설움이 눈물로 쏟아진 것이다.


아내가 던진 왜 우느냐는 질문에 한참을 더 울먹거리고서야 나는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 계약하고 싶대."


D출판사의 계약 제안 메일을 받고서 며칠 동안 혼자서 간직하고 있던 이야기를 아내에게 나누는 순간이었다.


치킨을 뜯으며.
손가락을 쪽쪽 빨며.

티비를 보며.

빈센트를 듣던 그날 밤엔 그렇게 많이도 울었다.


<Vincent>가 실린 앨범 [American Pie]


Don Mclean - <Vincent> 中


Starry, starry night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s of amber grain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 D 출판사와는 계약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만의 종자기를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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