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간만에 잠실에 들러 태양의 서커스 [쿠자]를 보았다. 팔자에 없는 뮤지컬을 어째 저째 여럿 보았으나 늘어지는 하품과 사람에겐 부채 다음으로 무겁다고 알려진 잠결의 눈꺼풀을 마주하기 일쑤였는데 서커스는 아주 재미있었다.
뮤지컬은 왠지 숨소리도 닥치고 봐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면 서커스는 뭐 보다가 맥주 처묵처묵해도 되고 소세지를 처묵처묵해도 되고. 그럼에도 대부분의 관객은 먹는 것을 마다하고 무대를 응시했으니 서커스의 관객 끄는 파워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가 술 마시며 싸움구경이라던가. 요즘으로 치면 UFC의 관객 정도가 되겠으나 술 마시며 목숨을 담보로 몸을 던지는 서커스를 구경하는 것도 꽤나 큰 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의 서커스는 [퀴담]이나 마이클 잭슨 [임모탈] 정도가 궁금했었는데 정작 [쿠자]를 처음 보고 나니 역시 퀴담이나 임모탈을 봤더라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막돼먹은 인간이라 가끔 일어나선 곤란한 일을 상상하곤 한다. 가령 축구 국가대항전을 볼 때 저따구로 공 차려거든 그냥 양 팀이 시비가 붙어 패싸움이나 하면 좋겠다... 라거나 야구를 보면서 뭐니 뭐니 해도 야구의 꽃은 벤치 클리어링이지라며 말 그대로 벤치가 텅텅 빌 정도로 양 팀이 모두 모여 쌈박질 직전까지 가는 그런 광경을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일어나면 곤란한 상황을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이 있으니 그건 바로 줄타기다. 서커스의 꽃은 역시 줄타기 아닌가. 안전장치 없이 네 사람이 줄을 타더니 이내 바닥에 안전장치가 깔리고 맨몸으로 줄을 타던 이는 길다란 장대를 들고 줄을 타고선 이어서 자전거.
무려 자전거!!! 를 타고 줄을 타더니 그다음으로 자전거 탄 몸 위에 의자를 얹고 또 줄을 타는. 그야말로 산 넘어 산 행위를 계속하는 탓에 장대-자전거-의자 소품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우에에에에엑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아무리 막돼먹은 나라도 이런 줄타기에서 줄이 끊어지거나 사람이 떨어지는. 일어나면 곤란한 그런 광경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 몸 쓰기에 그리고 균형 잡기에 재능갑인 사람들이 목숨을 담보로 몸을 훅훅 내던지는데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중국 기예단 출신쯤으로 보이는 여성 세명은 몸에 관절이란 게 없는 듯 엉덩이 뒤에 뒤통수를 붙이는 그런 자세를 선보였는데. 그 왜 호남의 어떤 지역에서는 '척추 접어불랑게' 라는 욕을 하지 않던가. 허리가 휙휙 꺾이고도 웃음을 잃지 않는 기예 여성들에게 그런 욕설은 소용이 없겠다는 쓸모없는 생각에도 잠시 빠져들었다.
서커스 보면서 가장 재미난 요소는 사실 관객의 반응이다. 위험한 자세와 상황이 나올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꾸애애애액 우에에에에엑 하는 소리와 함성이 끊이지 않는데 그 분위기가 정말 괜찮다. 무대와 관객석이 서로 마주 보는 구조가 아닌 대략 270도쯤 되는 원형의 관객석이라 정면에서 보면 더욱 좋았겠지만 측면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무대가 생각보다 작고, 그럼에도 무대 활용은 쩔고. 서커스 단원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는 동춘 서커스도 한번 보고 싶고 날이 따뜻해지면 남사당패 줄타기도 보고 싶다. 남사당패 공연을 보러 가는 길에는 분명 시나위 aka 임재범이 부른 [남사당패]를 들으며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