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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Feb 10. 2023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글 잘 쓰는 사람을 봐도 부럽다거나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는다. 내가 더 잘 써버리면 되니까능.. 헤헷. 근데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럽다. 개똥망 같은 내 손...


그도 그럴 게, 하나의 긴 이야기로 누군가를 웃기고 울릴라믄 영화로는 두 어시간이 걸리고, 음악으로도 5분 정도는 걸리는데, 그림은 한순간에 그걸 가능케 하니까...


반면 글을 써가지고 책으로 만들어서 누군가를 웃기고 울릴라믄... 아 고생도 그런 개고생이 없다... 야야야, 이것 봐라 내가 이제 웃기고 슬픈 이야기를 해줄게에에에, 하고서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려 해도, 이게 극장처럼 2시간 내내 강제적으로다가 집중시킬 수도 없는 거고, 독자의 집중력이란 게 정말 진득하니 두세 시간을 내리 책만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서도, 나처럼 집중력 출타한 사람이라면 한 5분 보다, 배 긁다가, 티비 보다가, 아들 닌텐도 뺏어서 스플래툰 하다가, 귤 까먹다가, 아이고 책은 무슨 책이고 음악이나 들을란다, 하는 인간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림은... 영화나 책이나, 심지어 음악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눈물을 주든 감동을 주든 웃음을 주든 하니까능, 훨씬 생산적인 게 아닌가아아아아... 아아아, 그러니 나도 그림을 잘 그렸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개똥망 같은 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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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음악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출판사 대표님이 책 표지로 쓸 만한 일러스트나 그림을 한번 찾아보고 괜찮은 게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셔서, 그간 평생 봐오던 것보다 많은 그림과 그림쟁이들을 찾아보았다. 보고서, 아 이 사람 그림 정말 좋다 싶으면, 팔로잉하고 작품들 보고 그랬는데, 책 나오면 다 언팔해 버릴 거야... 보고 있으면 질투나니까능...


근데 그렇게 그림쟁이들을 서치 하다가 나는 유독 한 사람의 그림에 푹 빠지게 되었는데 그건 거의 사랑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감정이었다. 그 사람의 그림을 처음 보았던 그 순간부터, 아 이 사람 그림을 내 책의 표지로 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림의 구도나 분위기나 색감이나 모든 게 내가 쓴 글에 어울리겠다 싶은 그런 그림쟁이를 찾게 된 것이다.


당연히 출판사 대표님에게도 말씀을 드렸고, 디자이너는 그의 비교적 최근 그림을 이용해서 표지 시안도 만들었다. 내 마음에 드는 그림이 책 판매로 이어질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이 사람의 그림을 쓸 수 있다면 표지에 대한 후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의 그림을 이용한 시안을 포함하여, 여러 개의 표지를 놓고서 고민하다가 결국 출판사에서는 그의 그림 사용에 대한 승낙을 받기 위하여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사용이 불가하다는 답변. 결국 짧은 시간 동안 사랑해마지 않았던 그의 그림을 놓아주고, 앞선 시안들 대신 디자이너가 직접 그린 그림을 써서 책 표지를 만들기로 했다. 책 표지만 놓고 고민했던 한 달의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그런 우여곡절이 있었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표지를 최종 확정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님이 새로 그려준 그림을 보고 있으니 이 역시 썩 마음에 든다. 아쉬움은 한쪽으로 밀어 두고 이번 기회에 새로운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이걸로 만족. 훗날 또 다른 원고를 쓰고서 그때도 그의 그림을 쓰고 싶을 때에는 미리미리 선수를 쳐야지. 아아,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럽다.


그래서 내가 푹 빠졌던 그 그림쟁이가 누군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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