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외근을 보고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버스 정류장을 앞둔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 가던 버스 기사가 앞 차를 향해 클락션을 몇 번 눌렀다.
빵. 빵빵. 빵빵빵빵.
그러자 버스 뒷문으로 내릴 준비를 하던 한 아저씨가 말했다.
"거 새끼 드럽게 빵빵거리네 진짜, 싯팔"
그건 명백하게 혼잣말이 아닌 누구라도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화들짝, 이란 표현이 어울릴까. 공기가 얼어붙는 느낌. 아니, 클락션 몇 번 눌렀다고 갑자기 저렇게 욕을 한다고? 버스 기사가 어떻게 반응하려나. 너 뭐라고 했어 이 새끼야, 하면서 큰 싸움이 벌어지진 않을까. 그동안 살면서 거친 성격과 불안한 눈빛으로 쌍욕을 퍼부으며 운전을 하는 많은 버스 기사들을 보아왔으니까. 그렇게 싸움이 일어난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겠지.
그런데 버스 기사의 반응이 생각과는 달랐다.
"아니, 앞차가 초보 운전인가 봐요. 좌회전 신호 받고 앞으로 쭉 가야 하는데, 자꾸 멈칫해서 알려주려고 누른 거예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깔끔한 사과라니. 버스 기사의 설명이 덧붙은 죄송하다는 말에 뒷문 앞에서 욕을 하던 아저씨는 흠흠 하고서 헛기침을 몇 번 하고야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버스 기사가 그렇게 갑자기 욕을 먹기엔 좀 억울한 상황이었는데. 와아, 버스 기사님 진짜 잘 참으셨네, 하는 생각. 오히려 이건 버스 기사님에겐 좀 굴욕적인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까. 화들짝으로 시작된 일은 그렇게 버스 기사의 사과로 일단락되었다.
자, 그럼 이제 뒤돌아 버스 기사에게 욕을 한 아저씨의 모습을 한 번 보자. 일수가방을 한쪽 팔에 끼고서는, 광이 나는 하늘색의 운동화, 모자 위에 걸쳐 놓은 검은 선글라스, 목과 손목에는 번쩍이는 금목걸이. 버스 기사에게 욕을 하던 아저씨의 모습이다. 사람의 외모만 보고서 말하는 건 몹시도 그릇된 일이지만, 아저씨는 또 몹시도 양아치 같은 모습이었다. 뭐,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욕을 할 수 있다는 건, 외모는 차치하더라도 양아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저씨 양아치죠?
살면서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너무 어렵다. 버스 기사의 경적 소리가 신경이 쓰이고 시끄럽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그 불편한 마음의 소리를 실제로 내뱉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텐데. 양아치 아저씨는 좋겠다. 세상에 겁이 없는 거겠지. 마음속에 있는 말 막 내뱉고 하면 스트레스도 덜 할 테고.
영등포에서 여의도로 들어오던 그날의 600번 버스 기사님에겐 리스펙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