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신춘문예에 매달릴 필요가 있겠는가, 말하고 싶지만 이런 말도 신춘문예에 당선된 사람이 뱉어야 설득력이 있지, 내가 해봐야 뭐 하등 설득력이 있겠는가. 시든 소설이든 신춘문예로 등단한 사람도 책을 못 내서 마음고생이 심하다던데 나는 그래도 책 나오고 좋아하는 광화문 교보문고 평대에도 올라봤으니 이거면 된 거 아닌가 싶지만.
이경 <난생처음 내 책> (신춘문예 vs. 출판사 투고) 중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작가들이 스스로 자기는 문단의 아웃사이더인 것처럼 생각한다고 말이죠.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조금은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다들 문단의 중심에 있으면서 아웃사이더인 척 하기는, 아휴 재수 없어, 낄낄낄, 하면서 말이죠.
저야말로 문단이란 게 실재한다면 그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 가끔 까치발 들고서, 눈만 빼꼼 내밀고는, 누가 나 좀 안 불러주나, 힐끔힐끔 눈치 보다가, 아아 이거 진짜 찌질하다, 글 쓴다는 놈이 이렇게 남들 눈치나 보고 있는 꼬락서니라니, 하면서 까치발을 내리고는, 고개 한번 떨구고는, 문단이고 나발이고 묵묵히 독고다이 나의 길을 걸어갈 테야, 하고 있는 아웃사이더 중에 아웃사이더 아닌가 싶은 거죠. 낄길낄.
이경 <작가의 목소리> (밸런스 게임과 비주류 인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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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페이스북에서의 일이다. 최근에 공저책을 내신 한 작가님이 책의 작가들과 함께하는 단톡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순간, 작가들의 단톡방이라니... 그건 뭔가 좀 징그럽겠군, 하는 생각과 함께 글 쓰는 사람들 여럿과 그렇게 자주 이야기 나누다 보면 글을 쓰는 삶이 조금은 덜 외로울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란 각자의 방에서 철저한 외로움 속에서 독고다이로 쓰는 거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헤밍웨이에게 원고를 봐달라고 말하지만, 헤밍웨이는 나보다 잘 쓴 글을 보면 질투가 날 테고, 나보다 못 쓴 글을 보면 짜증이 날 거라며 거절을 한다. 그 영화 속 헤밍웨이의 생각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작가라는 인간들의 본모습인 것이다. 마치 나보다 느리면 바보, 나보다 빠르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는 운전자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러니 글을 쓰는 사람은 숙명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
특히나 나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끼이지 못하는, 몹시도 애매하고도 모호한 그런 글쓰기의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그러니까 몇 년간 내 글쓰기의 목표는 오로지 출간에 있었다. 문학, 그래 나 문학할 거다, 작가, 그거 할 거야 하는 생각을 가지고서, 때로 내 글에 대한 자신이 없을 때는 익명의 문학 커뮤니티에 글을 한 번씩 던져보고, 반응이 어떤지 살펴보기도 했다. 주변 글쟁이들의 우쭈쭈 같은 것은 내 글쓰기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그렇게 신춘문예에도 글을 보내보고, 출판사 투고도 하게 되었는데,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이든 출판사 투고든 어쨌든 결국 최종의 목표는 책에 있었던 셈이다.
결국 투고로 책을 내게 되었고 다시 익명의 문학 커뮤니티에 들렀을 때, 나는 조금 축하를 받고 싶다는 찌질한 생각도 들고, 또 뭔가 출간 경험담을 나누면 어떨까 하는 순수한 생각도 들고, 또 조금은 잘난 척을 하고 싶다는 몹쓸 생각에, 네들도 최종 목표가 등단이 아니라 결국은 글을 쓰고 책을 내기 위함이라면, 꼭 신춘문예만 고집할 게 아니라 출판사 투고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말하였지만, 몇몇 유저들은 나에게, 이곳은 순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 너처럼 잡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는 답을 들려주었다.
쳇. 역시나 글을 쓴다는 인간들은 이렇게나 재수가 없다. 으으, 이 시부럴놈아, 너 내가 무슨 글 쓰는지도 모르잖아,라는 댓글을 달고 싶었지만, 내 그리 하진 않았다. 문청 여러분, 신춘문예가 아닌 출판사 투고도 괜찮지 않습니까, 하는 말은 역시나 신춘문예에 등단한 사람들이나 해야 그나마 멋들어지고 씨알이 먹힐 이야기일 테니까.
많은 출판사에서 말하길 에세이나 자기계발서 등이야 출판사 투고로 얼마든지 책을 낼 수 있다지만, 詩나 소설을 투고하여 책을 내기란 몹시 어렵다 하고 역시나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단을 통한 사람이어야 그나마 출간의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니 제가 그 어렵다는 투고로 소설을 낸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헤헷. 하지만 신춘문예처럼 정통적인 방식으로 등단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내 마음 한 구석에 아주 조금이나마 아쉬운 마음을 만들었달까. 그러니까 뭐, 문단, 그래 그 문단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나는 늘 그 문단의 한가운데에 가보지 못하고 변방의 구석에서 이름 없이 쭈구리로 있는 느낌. 헤헷, 문단 이놈들아, 네들이 나를 작가라고 생각이나 하냐, 헤헷.
글을 쓰고 책을 내고 SNS를 하다 보니,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 선생님들과도 하나둘 친구를 맺게 된다. 그거 보면서 나는 예의 그 성질 드러운 헤밍웨이가 되어서는, 아니 뭐, 솔직히 내가 더 잘 쓰지 않나, 내 글이 더 재밌지 않냐, 신춘문예가 뭐 별 거냐, 신춘문예 등단한 사람도 책 못 내서 고생하는데, 나는 그래도 책 이만큼이나 냈다, 하는 오만방자한 마음을 갖게 되는데, 이런 마음의 시작에는 결국 열등감과 외로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생처음 내 책>이나 <작가의 목소리>에 신춘문예나 문단에 대해 저렇게 주절주절 떠들어 댔던 것이고.
내가 정통의 방식으로 등단해서 글을 썼다면 사람들이 조금은 더 주목을 해주었을까.
문단이란 게 있다면 그곳에서도 내 글을 주시해 주었을까.
저 사람들은 저들끼리 잘 어울리네.
아, 외롭다. 외로워. 글을 쓰는 삶에 외로움은 당연하다 여기지만, 그래도 이건 좀 많이 외롭다. 헤헤 문단이라는 게 있다면 나야말로 진짜 아웃사이더다 이놈의 생키들아, 하는 생각을 할 때, 최민석 작가님이 신작의 추천사를 써주셨다. (아, 이 장문의 글이... 결국은 기승전책홍보로 가는가... 내 전두엽이 내게 책홍보를 하라고 말했다...)
뭐, 여하튼 최민석 작가님이 추천사 써주셨을 때의 느낌이란... 뭐랄까. 오, 자네는 글을 좀 괜찮게 쓰는구먼. 여기 내가 있는 문단이라는 곳 구석탱이에 발 하나 걸쳐도 괜찮겠는데? 해주는 느낌이었달까. 다섯 종의 책을 내면서 처음으로 추천사를 받게 되었는데, 이게 인정욕구가 조금은 해소되는 역할을 해주어서 좀 좋다.
아주 조금, 인정을 받는 느낌이 들어서.
최민석 작가님, 땡큐 쏘 마치...
책 3종을 한꺼번에 홍보할려니까 힘들다 하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