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와 성당에

by 이경




며칠 전 유퀴즈에 엄정화가 나와서 보았다. 엄정화는 자신이 꼽는 최고의 앨범으로 <몰라>가 실린 5집을 이야기했지만, 누군가 나에게 엄정화가 부른 수많은 곡 중에서 딱 하나만 추천하라면 별다른 고민 없이 <엔딩 크레딧>을 들으라고 할 것이다.


엄정화가 부른 <엔딩 크레딧>은 나에게는 좀 특별하게 느껴지는 곡인데, 일례로 음악 에세이 <그 노래가 내게 고백하라고 말했다>의 원고를 쓰면서 마지막 꼭지로 아델(Adele)의 <When We Were Young>과 엄정화의 <엔딩 크레딧>을 두고서 고민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원고를 쓰던 그때로 돌아가 몇 번이고 다시 고민해 보라면, 그때마다 아델의 <When We Were young>을 마지막 꼭지로 쓰기는 하겠지만, (정화 누나 미안해영...) 아델의 곡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나는 분명 엄정화의 <엔딩 크레딧>을 책의 마지막 꼭지로 쓰지 않았을까.


여하튼 책에서 꼭지 하나를 들여 엄정화의 음악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엄정화에 대한 이야기는 꼭 하고 싶어서 짧게나마 책에서 몇 줄 적어두었다. 포크 듀오 '어떤날' 출신의 베이시스트 조동익의 솔로 앨범 [동경]에 실린 <엄마와 성당에>를 이야기하면서였다.


내가 조동익의 <엄마와 성당에>라는 곡을 알게 된 데에는 순전히 엄정화의 덕이었던 까닭인데, 사연인즉슨 아마도 90년대 중후반, 그러니까 중딩이나 고딩쯤이었던 시절 한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로 엄정화가 나와서 이 곡을 틀어주었기 때문이다.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가 나와서 음악을 추천해 주는 일이야 매일같이 일어나는 흔한 일이지만, 엄정화가 <엄마와 성당에>를 추천해 주었던 그 순간은 이상하리만큼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왜 그러한가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건 엄정화에 대한 선입견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90년대는 요즘과 달리 배우가 음악을 하면 색안경을 끼고서 바라보던 시절이기도 했다. 실제로 노래 실력이 형편없음에도 배우로서의 인기에 힘입어 음반을 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고. 엄정화 역시 연기와 노래를 동시에 하면서 한때는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서 바라보는 사람들을 마주하기도 했을 테고.


나 역시 엄정화라는 사람을 처음 인식했던 것은 가수가 아니라 배우로서였다. 특히 박중훈과 故최진실이 부부로 나왔던 영화 <마누라 죽이기>에서의 엄정화는 너무 예뻐서 좋아했다. 그 시절 이런저런 연예 잡지를 사면 끼워주는 브로마이드에서 엄정화가 나오면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을 정도였으니, 말하자면 나는 엄정화의 얼빠였다.


지금이야 엄정화를 가리켜 한국의 마돈나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음악 커리어 초기에는 분명 의심에 가득한 사람들이 있었던 듯하다. 나 또한 배우로 먼저 인식했던 엄정화의 음악이 어떠할지 몰랐었고.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 방송에 엄정화가 나와서 조동익의 <엄마와 성당에>를 추천곡이라면서 틀어주었던 것이다.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가지고 있는 생각 하나는 노래를 잘하는 것과 좋은 음악을 듣는 귀를 가지는 것은 전연 별개라는 것이다. 가수로서 엄정화의 행보가 어떠할지 알지 몰랐을 때, 엄정화가 추천한 <엄마와 성당에>를 들으면서 엄정화는 좋은 음악을 듣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곡을 좋아할 정도의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음악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게 되면서.


그 라디오 방송 이후로는 배우 엄정화와 함께 가수로서의 엄정화도 좋아하게 되었다. 내 인생으로 치면 조동익이나 어떤날을 알게 해 주었던 인물이 엄정화였던 셈이니, 나는 음악 에세이를 쓰면서 꼭 그렇게 엄정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정화에 대한 그 고마움을 책에서나마 기록해두고 싶어서.


<그 노래가 내게 고백하라고 말했다>를 출간하고서, 지난 4월에는 국악방송 <최고은의 밤은 음악이야>에 게스트로 출연해서는 조동익의 <엄마와 성당에>를 틀기도 했다. 그 옛날 엄정화가 틀어준 <엄마와 성당에>가 오랜 시간이 흘러 책의 한 꼭지가 될 수 있었듯이, 누군가는 내가 틀어준 <엄마와 성당에>를 들으며 오랜 시간 이 곡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방송 유퀴즈에 엄정화가 나와 반가웠다.

정화 누나 땡큐 쏘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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