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운전자

by 이경



내가 콤푸타에 랜선을 꼽은 이래 만난 글귀 중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라면, 나보다 느린놈은 바보고 나보다 빠른놈은 미친놈이다, 하는 운전자에 대한 명언이다.


나는 이게 인간의 개인성을 가장 잘 표현한 글 같다.


그리고 나는 작가 역시 운전자의 이러한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내가 가진 필력은 늘 글쓰기의 마지노선처럼 생각되어 나보다 못한 사람은 바보 같고, 나보다 잘 쓰거나 인기가 많은 이들을 볼 때면 나는 늘 내 배알의 안위를 우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진짜 이렇게 나쁘게 생각하는 놈은 아니고... 나는 가끔 부러 위악을 부리는 일이 있는데, 왜 그런가 생각하면 나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 착해빠져 가지고, (초딩 5년 착한어린이상 수상자 출신) 이렇게라도 한 번씩 위악을 부려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나보다 글을 못쓰거나 하는 사람들은 다들 바보인 것이다.


이번에 서울국제도서전에 갔다 오면서 책도 많이 보았지만 많은 작가들도 보았다. 그곳에서 나는 운전자의 심정이 되어 나를 중심으로 바보 같은 작가들과 내 배알을 꼬이게 만드는 이런저런 작가들을 비교해 본 것이다.


도서전에서, 특히나 문학서를 많이 내는 출판사들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비었는데, 문학동네나 창비, 문지, 민음사, 마음산책 등이 그러했다. 그곳에서는 몇몇 작가들이 돌아가며 사인회를 열고서 독자들을 맞이했는데 대부분이 성황이었다.


그러한 문학 출판사 외에 (내가 알기론) 자비출판 비슷하게 작가들을 양성해 내는 한 출판사도 크게 부스를 차렸는데, 그 부스 안에서도 책을 낸 몇몇 이들이 소설가나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에게 사인을 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어려 보였고, 책은 인기가 없어 보였다.


도서전 부스를 이리저리 네다섯 바퀴를 돌면서 보았으나 나는 그들에게서 사인을 받아가는 독자들을 단 한 명도 보질 못했다. 자신의 책을 높이 쌓아두고 독자들을 기다리는 그들은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기도 했으며, 그들은 주로 침울한 표정으로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으며, 누구라도 붙잡고서 사인을 해주길 갈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작가라고 해서 모두가 알아봐 주는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운전자로 비유해서 말하자면 나는 그들이 나보다는 느린 운전자처럼 여겨진다. 물론 속도가 차의 성능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며, 속도와 개인의 행복도는 별개이다. 느리게 달려도 자신이 행복하다면야 내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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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에 가서 나는 딱 세 사람의 글 쓰는 이들에게만 아는 척을 했다. 작가뿐 아니라 몇몇 출판사 대표나 편집자에게도 인사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돌아보니 그러질 못했다.


문인상경이라고, 나에게 다른 작가들은 바보 같거나, 내 배알을 꼴리게 만드는 이들이라고 힘껏 위악을 부려보아도 결국 나는 어느새 글을 쓰는 이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고서 위안을 삼는 인간처럼 되어버린 셈이다.


글을 쓰는 이의 눈 건강과 차기작에 대한 부담, 신간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 온라인으로 알고 지내다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찡한 느낌이 드는 일. 우리는 각자 누군가의 바보나 미친놈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는 아닐까.


나보다 느린 이들은 조금 더 속도를 낼 수 있기를, 나보다 빠른 이들은 가끔 휴게실에 들러 쉬엄쉬엄 쉬어 갈 수 있기를.


그러면 나는 그 틈을 타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싶...


*사진은 딜쿠샤에서 본 타자기.

*BGM은 어쩐지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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