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후기의 1/4을 읽고서

by 이경


<서울국제도서전>에서의 교유당 부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출판사 부스를 돌아다니다가 교유서가 aka 교유당에도 몇 번 들렀다. 몇몇 페친분들이 교유서가에서 책을 내신 까닭인데, 그 책들은 나중에 천천히 읽어보도록 하고, 도서전에서 우선적으로 들고 온 책은 오경철 편집자의 <편집 후기>였다. 책을 계산하는데 직원 분께서, "혹시 필요하시면 에코백 드릴까요?"라고 여쭈어보셔서, '아이 참, 그런 건 묻지도 따지지도 마시고 그냥 주세영.' 하는 마음의 소리를 감추고서는, "네네." 하고 받아와 버렸다. 헤헷.


도서전에서는 다섯 권의 책을 사들고 왔는데, 가장 먼저 눈이 간 게 바로 이 오경철의 <편집 후기>였다. 주말 내 책의 1/4을 읽었다. 요즘처럼 눈이 침침하고, 책 읽기를 게을리하는 내가 하루이틀 사이에 1/4을 읽어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전히 출판 편집자들이 쓰는 글과 책을 좋아하는데, 내가 읽은 편집자들의 책 대부분은 여성 편집자들이 쓴 책이었다. 남성 편집자의 책은, 글쎄. 정상태 편집자가 유유출판사에서 낸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 같은 책은 아주 좋아하지만, 몇몇 남성 편집자가 쓴 책은 아주 끔찍하기도 했다. 오경철 편집자의 책은 오랜만에 읽는 남성 편집자의 책인 셈이다.


어떤 책은 표지만 보고서 사기도 하고, 어떤 책은 제목만 보고서 사기도 하지만, 또 어떤 책은 대충이라도 읽어보고 사기도 한다. 나는 교유서가 부스에서 <편집 후기>를 열어 후루룩 펼쳐보다가 편집자라는 직업의 단점에 대해 나오는 부분을 읽고서 구매하지 않을 길이 없었다. 오경철 편집자가 말한 편집자라는 직업의 단점이 무엇인가 하면...


겨우 책의 1/4을 읽고서 책에 대해 떠들게 된 데에는, 이 책이 좋은 책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뭐랄까, 내가 읽어본 편집자의 책 중에서 가장 문학적인 느낌을 풍기는 글이랄까. <편집 후기>는 책을 만드는 방법 따위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편집자라는 직업을 가진 한 개인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데, 어쩐지 이야기 전반에 걸쳐있는 정서가 무척이나 우울하게 다가온다. 이 우울감이 이 책의 내용을 문학적으로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거 같기도 하고.


편집자라는 직업에 대해 꿈과 희망,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이들이 <편집 후기>를 읽는다면, 재빠르게 현실 세계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가령 책을 만드는 일은 때로 지리멸렬함을 견뎌내야 하고, 참여하기 싫은 술자리에 나가기도 하며, 연봉협상 등을 두고서 면접에서의 어색한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는 것. 물론 이런 이야기들이 더욱 우울하게 느껴지는 데에는 글쓴이 개인의 성격이 한몫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기계치인 저자는 팩스를 보내는 일에도 어려움을 겪지만, 다른 이들에게 그 방법을 물어보는 사람은 아니며, 직장 내에서는 대개 말하지 않고 지내며, 어느 날 직장 상사와 함께 탄 차에서 책을 읽어보라는 지시에는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생각하면서도 전기수의 역할을 한다. (그가 전기수의 역할을 한 작품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과대포장하지 않는다. 몇몇 편집자들이 책을 만드는 일을 출산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오경철 편집자는 그게 무척이나 오바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나는 출간을 출산에 비유하는 몇몇 남성 글쟁이들을 혐오한다...)

이런 저자의 생각이나 행동, 또 우울한 정서가 나와는 조금 닮았다고 느껴서인지, 그의 글을 읽는 게 즐겁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의 편집자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생각의 끝에서는 어쩐지 자꾸만 서글픈 장면들이 떠오르곤 했다.


<편집 후기>의 1/4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부분이라면 '만들 수 없었던 책'이라는 꼭지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자신이 만들지 못한 한 작가의 책을 실력 있는 다른 편집자가 만들었다며 이야기를 끝맺는데, 오경철이 만들지 못했다는 책의 작가가 누구인지 너무나 뻔히 드러나는 문장이 마지막에 실린 것이다.

나는 이게 무언가 드러내고자 하는 은밀한 욕망과 철저하게 숨김으로써 돋보일 수 있는 절제미 사이에서 전자가 이겨버린 문장처럼 보인다. 물론 그가 쓴 마지막 문장은 내 개인의 호오일뿐, 그가 편집자가 아닌 작가로서 어떤 문장을 쓰든, 내 알바겠냐마는.


1/4을 읽은 책이지만, 추천.

한 때의 직장 동료였다는 박혜진 편집자의 추천사도 좋았다.


나중에 더 읽고 더 떠들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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