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먹던 짝꿍을 닮았다. 아들 젤리 사주려고 캔디샵에 들렸다가 나 먹으려고 들고 왔다. 미국산이던가. 대한민국에서는 왜 짝꿍이 안 나오는가. 어릴 적 짝꿍을 즐겨 먹었다. 짝꿍이 그리워서, 먹고 싶어서 들고 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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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 이야기를 꺼냈으니 짝꿍 얘기를 좀 더 하자. 초딩 5년 때 짝꿍 이름은 김유정. 쌀쌀맞고 차갑던 기지배. 책상에 선을 긋고 넘어오면 죽이네, 살리네 했다. 주로 죽어나가는 쪽은 나였다. 이상하게도 초딩 5년 때 나는 방구를 못 참았다. 방구를 뽕뽕 부아악 뀌고 나면 김유정이는 코를 틀어막고 나를 갈궜다. 당시 나는 축농증을 앓고 있던 탓에 냄새를 못 맡았다. 방구 냄새가 그리도 지독했니? 유정이는 5학년을 마치기 전에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다. 전학 가며 울던데. 갈굴 사람을 놔두고 떠나는 게 슬퍼서 울었던 거니? 초딩 때 짝꿍 이름이 김유정이었던 까닭에 <봄봄>, <동백꽃>을 쓴 소설가 김유정을 떠올릴 때면 그가 남자였던가 여자였던가 한다.
중학교 때 다니던 학원 짝꿍 이름은 김영랑이었다. 볼살이 통통하고 피부가 하얗던 아이. 중학교 때 포경수술을 했다. 이미 경험을 마쳤던 아이들은 아파 죽네 울던데. 나는 괜찮았다. 수술을 마치고 곧바로 뛰어다녔으니. 마취가 풀리고서야 왜 친구들이 아파 죽으려 했는지 이해가 갔다. 수술을 마치고 종이컵이라는 이름의 보호대를 며칠간 차고 다녔다. 현진영도 아니면서 걸을 땐 엉거주춤을 쳐댔다. 학원에서 아이들은 나만 모르는 비밀을 얘기하듯 저들끼리 웃었다. 그때 김영랑이는 내게 말했다. "괜찮아. 경화야. 울 오빠도 어제 수술했어." 김영랑이가 내게 건네준 말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들었던 가장 따뜻한 말 베스트 빠이브 안에 든다. 중딩 때 짝꿍 이름이 김영랑이었던 까닭에 시인 김영랑을 떠올릴 때면 그가 남자였던가 여자였던가 한다.
내 짝꿍은 아니었지만, 와이프의 짝꿍이었으려나. 와이프의 절친한 친구 이름은 김연수다. 연애시절 김연수는 가끔 나와 와이프 사이를 훼방 놓기도 하고 가끔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강남역에서 지금의 와이프와 처음 닭을 뜯던 날 내 옆에는 김연수가 앉아 있었다. 아마도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절친의 남자 친구로 괜찮은 사람인지 감시 차원에서 나온 거 같았다. 닭이나 뜯어 이것아. 김연수의 감시와 의심을 뚫고 나는 와이프와 결혼을 했다. 와이프가 던진 부케를 받은 이가 김연수였던가? 연수는 지금 아이 셋을 낳아 키우고 있다. 와이프의 절친 이름이 김연수인 까닭에 소설가 김연수를 떠올릴 때면 그가 남자였던가 여자였던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