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에 신간을 내고서, 한참을 망설였던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계획으로는 여섯 번째 책이 될 원고였다. 오래 망설였던 만큼 힘을 내서 써봐야지, 하고 호기롭게 새문서를 열었다. 원고지 100매 분량까지 열심히 써봤지만, 결국에는 더 쓰기를 멈추었다. 내게 책 쓰기는 늘 의미를 찾는 일이었는데, 쓰면서 점점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어 졌으므로.
그 후로는 무얼 써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했다. 이런 지리멸렬함을 눈치챘는지, 전에 같이 작업했던 한 출판사에서 책 하나를 더 만들어보자고 연락을 주었다. 출판사에서는 브런치에 내가 써두었던 글 몇 꼭지를 찝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브런치는 자기 글이 아니고서는 글복사가 안 된다.)
그렇게 긁은 글을 모아보니 원고지 500매가 넘게 나왔다. 진행을 한다면 대부분 새로 고쳐 써야 할 글들이다. 출판사와는 다음 주쯤 미팅을 하기로 했다. 번잡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다듬어졌다.
점심엔 서점에 들러 페친이 쓴 책을 하나 들고 왔다.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하고서 미루었던 책이었는데, 아무 페이지나 펼쳤을 때 존 레넌(John Lennon)의 <Starting Over>가 나오는 걸 보고서는 가져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매년 12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우울하게 클라투(Klaatu)의 <December Dream>을 듣는 게 연례행사였다.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넘어가던 12월의 마지막 날에는 예의 클라투가 아닌 존 레넌의 <Starting Over>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했다.
책을 내야지, 작가가 되어야지 생각하고서 새로이 시작해 보자며 들었던 곡이 바로 <Starting Over>였다. 어떤 원고는 멈추었지만, 어떤 원고는 새로이 쓰게 되었다. 어쨌든 계속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