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 모르는 것, 안다고 생각했던 것>
서점에 들르는 일을 좋아하는데, 종이 냄새 킁킁 맡아가며 하는 책 구경 자체가 좋은 것도 있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할 그 수많은 책들을 보면서, 아 내가 모르는 세계가 이렇게나 많구나, 내가 아는 것, 혹은 안다고 생각했던 게 이렇게나 조또 없구나 하는 반성과 거시기 뭐랄까, 아무튼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면서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것이 서점이라는 공간의 최고 장점이 아닌가 싶다. 아님 말고.
내가 본격적으로 외부에 보이기 위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음악 웹진 리드머 필진으로 참여하고 나서부터였는데, 그때도 나는 팩트를 기반으로 쓰는 글에 두려움이 있었다. 가령, A 뮤지션은 1980년에 태어났다, 하는 간단한 문장 하나를 쓰는데도, 아 씨바 A는 진짜 1980년에 태어났을까? 사실은 1979년에 태어났는데 부모가 출생 신고를 늦게 한 거 아닐까? 그렇게 A는 원래 1979년에 태어났는데, A 스스로도 나는 1980년에 태어났습니다,라고 믿고 있는 거 아닐까. 아 나는 모르겠다, 머리가 아프다, A가 1980년에 태어났다는 걸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위키피디아나 나무위키 같은 이런저런 어쩌고 저쩌고 위키위키 뭐 그런 거 보고 오키도키 베끼면 되는 건가. 나 영어 잘 못하는데, 파파고 번역기 돌리면 되나.
물론 나는 이런 팩트 확인에 대한 강박이 좀 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리드머에 글을 쓸 때도 팩트 위주의 글보다는 나만 알 수 있는, 내가 실제로 겪었던 경험과 생각 위주의 글을 쓰기 시작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보통 이걸 '에세이'라고 말한다.) 그냥 남들처럼 이런저런 무슨무슨 위키위키 같은 곳에서 글 베껴다가 쓰면서 엣헴, 잘난 척해도 상관없었을 텐데.
그러니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사는 것은 어마무시하게 넓은 서점 안에 놓여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하는 게 얼마나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말인지. 테스 형, 저는 아는 게 개뿔 조또 진짜 없는 것 같아요. 아니, 그렇잖아. 사주 보는데 점쟁이가 몇 시에 태어났냐고 물어보길래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엄마도 그날 정신이 없어서 내가 아침 여섯 시에 나왔는지, 일곱 시에 나왔는지 모르더라니까. 내 자신이 몇 시에 태어났는지도 몰라서 사주를 못 보고 있는데, 진짜라고 믿는 그 수많은 것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무엇으로 증명을 하겠느냐고.
그래서 자신 있게 자신의 주장을 글로써 표현하는 이들을 보면, 아니 진짜 뭘 믿고 그렇게 확신에 차서는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거예요? 따져 묻고 싶기도 하다. 물론 나 같은 놈이 이것도 맞는 것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고, 이리 간 보고 저리 간 보고 하다가 결국 간에 무리가 와서 우루사 먹고,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가 되는 거겠지만,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의 사실 여부에 확신이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그럼에도 가끔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담긴 글을 읽고 나면, 게다가 그런 글이 또 다른 무지의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거 보면, 이거 이거 위험한데,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읽은 글 중에 가장 이상한 주장은 이거였다.
한마디로 출판사는 저자 인세 10% 주면서 왜 자기들은 90% 처묵처묵하냐, 하는 식의 글이었는데, 이런 주장을 보면 나는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런 주장이 담긴 글을 쓴 이는, 책은 절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마진은 출판사와 저자 둘만 나눈다,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는 걸까. 당장 글쓴이가 생각하는 출판사 90%의 몫에서, 서점에 줄 돈 빼고, 지업사에 줄 돈 빼고, 인쇄소에 줄 돈 빼고, 후가공 업체에 줄 돈 빼고, 편집자 월급 빼고, 디자이너 월급 빼고, 마케터 월급 빼고, 외서라면 라이센스 비 빠지고, 번역비 빠지고, 임대료 빠지고, 전기료 빠지고, 쓸개도 빠지고, 뼈도 빠지고, 오탈자 찾다가 눈도 빠지고, 가끔은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사랑에도 빠지고, 이것도 빠지고, 저것도 빠지고, 여하튼 출판사도 책 하나 팔았을 때 가져갈 수 있는 마진이라는 게 통상 20~30%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단순히 글쟁이에겐 책값 10% 주니까, 90%는 출판사가 먹겠지, 하는 생각은 "네들 사정 모르겠고, 나 글 쓰는 사람인뎅 왜 나한테는 10% 밖에 안 주는 거양." 하는 징징거림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출간 경험 없는 이가,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로 좌판을 벌이며, 글 쓰는 사람들아 이거 봐라, 출판사에서는 글쟁이에게 겨우 이거 주고 나머지는 지들이 다 먹는다,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출판사 사람도 아니고 글 쓰는 인간인데, 왜 출판사를 변호하고 옹호하고 있는가. 이것은 변호도 옹호도 아니다. 나름의 실전적 경험에 의해 이리 따져보고 저리 따져보고 했더니 저자 인세 10%가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인다는 생각을 말하는 것뿐. 어차피 책 팔아서 돈 벌긴 글러버린 세상 아닌가. 근데 서점도 죽겠다, 작가도 죽겠다, 출판사도 죽겠다, 하는 세상이니 정말 책 팔아서 먹고사는 이는 누구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아, 슬픈 현실.
내가 살면서 느낀 가장 큰 진리가 있다면, 삶은 결국 제 밥그릇 챙기기 싸움이라는 거다. 내 생각을 따라주는 누군가를 보았을 때, 공감으로 읽는 이가 있는가 하면, 동조로 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 배려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오지랖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세상 많은 일은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건데, 그럼에도 사실이 아닌, 어설프게 아는 이야기들을 퍼 나르며, 아님 말고 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건 위험한 일이다. 뭐, 이런 걸 두고 요즘에는 '가짜 뉴스'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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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책에 들어갈 원고 선별하면서, 과거에 쓴 글들 읽고 있는데, 글을 진짜 너무 잘 썼네.
글이 어쩜 이렇게 리드미컬하게 읽히냐. 응? 아님 말라지. ㅋ
몇 년 전 글공부 한다는 누군가가 출판사에서는 왜 글쟁이에게 인세 10%만 주고 자기네들이 90% 먹냐는 식으로 글 써서... 그걸 보고서 쓴 글인데... 하아... 암튼 이렇게 책에 들어갈 글을 하나 건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