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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열어야겠어 세미나

by 이경


빈지노 <990>




빈지노가 발표한 정규앨범 [Nowitzki]에서 가장 맘에 드는 곡이라면 김심야와 함께한 <990>이다.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에 나올법한, 보자보자 더 정확한 예를 든다면 무엇이 있을까... 그래 [장고] 같은 영화에 나올법한 구불구불 비트랄까. 굽이굽이, 굽이굽이 에에이.


<990>에서 앨범을 관통하는 가사가 있다면 '왜 이렇게 내 삶이 재밌냐면 조금 돌아가도 언제나 Straight Up 예술로'라고 생각한다. 진작에 뮤지션을 넘어 아티스트의 반열에 오른 빈지노를 가장 잘 표현한 라인이 아닐까. 굽이굽이, 굽이굽이 하면서도 늘 예술로 가닿는.


<그 노래가 내게 고백하라고 말했다>를 출간하기 전에 출판사 대표님과 미팅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었다. 나는 그냥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어렸을 때는 음악을 하고 싶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글쓰기를 통해 창의력을 발휘하고 싶은 거라고.

글 잘 쓴다는 사람들의 글을 봐도, 하나도 안 부러운데, 예술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서는 조금 질투가 난다는 말씀도 드렸다. 몇몇 감각의 영역에서 글을 쓰는 시인들. 미팅 때는 <털 난 물고기 모어>를 쓴 드렉퀸 모지민의 글을 예로 들었었고.

어쨌든 굽이굽이굽이굽이 조금 많이많이많이많이 돌아버린 감은 있지만, 몇 년 전부터는 글을 쓰고, 책으로 엮으면서, 하고 싶은 걸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이런 일들이 사람들에게 예술로 보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앞서 말한 빈지노의 가사 바로 앞에는 재미난 가사 한 줄이 나오는데, 바로 '나도 열어야겠어 세미나'이다. 나는 이 부분이 빈지노를 아티스트로 돋보이게 하는 정말 재미난 가사라고 생각한다.

최근 읽은 책에서, 사람들에게 책을 쓰려는 이유를 물으면 십중팔구 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위함이라는 글을 보고서는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쓰기의 목적이 강연이라니.


책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은 그저 수단일 뿐 책을 통해 강연을 하고 돈벌이에 나서려는 사람들이 있는 거겠지. 전자는 아무래도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고, 후자는 자기계발서를 쓰는 사람들이 많을 테고.

그러면서 사람들은 정말 사람들을 가르치길 좋아하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글과 책과 관련하여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라면, 고작 책 하나를 내고서, 글쓰기(책쓰기) 세미나를 여는 사람들이다. 아예 그게 직업이 된 사람들도 있고. 그들은 대개 글은 짧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족속들이지만, 왜 글을 짧게 써야 하는지는 잘 모르는 거 같다.


아티스트는 작품 그 자체로 대중들에게 평가를 받는 존재들이지, 세미나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몇몇 엉터리 글쓰기 강사들을 보며, "자기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남을 가르치는 법이지." 하는 우디 앨런의 말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한들 몰라몰라, 나도 열어야겠어 세미나. 빈지노가 세미나를 열 일은 없어 보이지만, 나는 빈지노가 아니니까. 얼마 전 작가와의 만남을 제안한 도서관 사서 선생님에겐 그러자는 답장을 드렸다. 책을 다섯 정도 냈으면 한 번쯤은 오프라인에서 독자들을 만나보아도 좋지 않겠냐는 합리화를 하며. 강의계획서 제출해야 하는데, 저자 사진 넣는 부분에서부터 막혀있다. 굽이굽이, 굽이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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