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발표된 다이나믹듀오의 <동전 한 닢> 리믹스 트랙에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벌스와 가사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가사라면 피타입(P-Type)이 노래한,
'븅신이 븅신인 걸 알면은 븅신 아냐 븅신은 븅신이 븅신처럼 븅신인 걸 몰라야 븅신 븅신 눈엔 모두가 븅신 또 모두에겐 모두가 븅신' 하는 소위 븅신 랩이 있겠다.
근데 내가 곡에서 제일 간지가 넘친다고 생각하는 가사는 이센스의 벌스에 등장하는 라인인데, 내용이 이렇다.
'내 이력서는 다 빈칸, 그 첫 줄에 적힐 네 글자는 한국힙합'
정말 너무 멋있는 가사가 아닌가. 만약 이센스가 자신이 뱉은 가사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그저 그런 래퍼가 되었다면, 이 가사는 특별할 게 없었겠지만, 15년이 흐른 지금 이센스는 자신이 말한 것처럼 한국힙합을 대표하는 뮤지션이 되었다. 간지 개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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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제안으로 조만간 오프라인에서 독자님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강연이나 강의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꼭 내가 무언가를 알려드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 좀 쑥스럽고, 그냥 '작가와의 만남'이라고 생각하면 비교적 마음이 편하다. 내가 뭐 누구한테 가르칠 게 있나, 그냥 옹기종기 모여서 책이야기나 좀 떠드는 거지.
근데 또 도서관에서 요구하는 서류 등은 갖추어야 하니까. 도서관에서 보내준 '강사 이력서'에 이름 넣고, 연락처 넣고, 이메일 넣고, 주소 넣고, 사진은 고민 좀 해보다가 포토샵으로 조진 후에 넣으며 되겠지...(아님...)
여하튼 비교적 기입하기 쉬운 칸들 아래엔 약력 칸이 기다랗게 있는데, '학력, 경력, 강연, 저서, 수상' 등을 넣으면 된다고 쓰여있다. 보자보자, 학력은 가방끈이 짧아서 못 쓰겠고, 경력도 개뿔 없어서 못 쓰겠고, 강연 경험도 없고, 수상도 없으니 결국 약력 칸에는 꼴랑 다섯 줄의 저서만 넣게 된다.
2019년 소설 <작가님? 작가님!> 발표
2020년 에세이 <힘 빼고 스윙스윙 랄랄라> 발표
2021년 에세이 <난생처음 내 책> 발표
2022년 에세이 <작가의 목소리> 발표
2023년 에세이 <그 노래가 내게 고백하라고 말했다> 발표
이렇게 내 강사 이력서에서는 꼴랑 다섯 줄이 다다. 책이나 써서 다행이지, 책을 안 썼으면 약력 칸에 넣을 게 하나도 없을 뻔했다. 책을 쓰면 이런 게 너무 좋아. 내가 어떤 인간인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
그리고 이 다섯 줄이 글쟁이에겐 나름 간지 아니겠냐며.
어쩐지 이센스가 된 기분이다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