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우마 베이 미워요
나이 서른에 결혼하고 비행기를 처음 탔다. 서른 전에 지금의 아내와 제주도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입도하여 하늘을 날 일이 없었다. 신혼여행으로 비행기를 처음 탄 셈이다. 결혼식 다음 날 첫 비행을 앞두고 아내는 "신발 벗고 타는 거 알지?" 라며 나를 놀리기도 했다.
평소 걸으며 보는 걸 좋아한다. 비행기 한번 못 타본 주제에 여행지는 무조건 휴양지보단 관광지가 옳다고 생각했다. 신혼여행지 선정을 앞두고 아내에게 네팔에 가자고 했다가 혼이 났다. 신혼여행 때가 아니면 네팔에 가볼 일이 없을 것 같아 제안한 것인데 대차게 까인 거다. 그렇게 우리는 프랑스 파리와 스위스의 몇몇 도시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촌놈이 파리 가서 에펠탑도 보고 성공했다.
결혼 후에는 종종 비행기를 타게 됐다. 중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아내 덕에 상하이에도 다녀왔고 일본의 간사이 지방이나 규슈, 오키나와에도 다녀왔다. 뒤늦게 해외여행에 맛이 들렸다.
아내의 형제로 손위 처남(형님)이 한분 계시는데 결혼을 하시곤 현재 하와이에 거주 중이시다. 덕분에 결혼 4년 차에 하와이를 다녀올 수 있었다. 추석 연휴가 유난히 긴 해였다. 하와이 현지에서 밥 먹을 돈만 들고 다녀왔다. 비행기 삯은 아버지가 그동안 모아 놓으신 수만 마일의 마일리지를 사용했다. 잠은 형님의 집에서 해결했으며 교통수단 역시 우리 가족을 위해 회사에 장기 휴가를 신청한 형님의 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나중에서야 계산기를 두드려봤는데 나 같은 월급쟁이 인생으로 하와이 여행은 평생 한 번 어려울 거 같았다. 아버지의 마일리지, 형님의 현지 거주, 긴 추석 연휴 등이 맞물린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연휴가 길었고 호텔이나 자동차 렌트 비용이 들지 않아 신혼여행 때보다 더 길게 하와이에 머물 수 있었다. 매일 눈뜨면 형님의 집 앞에 있는 쉐이브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색색의 색소가 뿌려진 아이스크림을 먹고 집 앞 놀이터에서 아이와 산책을 했다.
하와이는 관광보다는 휴양지라고 생각했다. 사실 잘 몰랐다. 안 가봤으니 알 턱이 있나. 그저 바다 한가운데 있고 주변엔 산이 있겠지. 개뿔 뭐 있겠어? 싶었다. 그런데 뭐가 있었다. 하와이는 다녀와도 또 가고 싶다는 주변 지인들의 말을 그곳에 가서야 이해했다. 하와이는 그저 날씨 하나만으로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멋진 하늘과 아름다운 구름. 시원한 바람과 가끔 뜨는 무지개. 음식도 맛있었다.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에서는 밥을 제공하기도 했다. 진짜다.
형님 집 근처에 와이키키 해변이 있어 아침마다 산책 삼아 해변을 거닐었다. 낮에는 드라이브하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벗 삼았고 밤에는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여유를 즐겼다.
8박의 일정이었는데 딱 절반인 나흘이 지나 일이 터졌다. 형님 가족과 함께 스노클링 하기 좋다던 하나우마 베이에 갔다. 물은 얕았고 파도도 크게 치지 않는 조용한 바다였다. 스노클링 하기 좋다는 말에 바닷속에 얼굴을 들이미는 순간 정말 작은 파도가 내 얼굴을 쓸고 갔다. 그냥 지나치면 좋았을 파도는 내 안경을 바다 어딘가로 가지고 갔다. 망했다.
안경을 벗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와이에서의 꿈결 같은 시간이 악몽으로 변했다. 형님 내외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안경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 주셨다. 하와이에서는 안경을 맞추려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안경이 나오기까지는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일주일이면 하와이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 있을 시간이다. 한국에서의 '빨리빨리' 문화가 한없이 그리워지는 순간. 그렇게 일정의 반을 안경 없이 지내야 했다.
원거리의 멋진 광경을 보고 싶을 땐 카메라 모드의 아이패드를 눈앞에 놓고 봤다. 차이나타운과 진주만에 가서도 아이패드가 안경 역할을 해줬다. 그 아름답다던 탄타루스의 야경도 아이패드를 통해 봐야만 했다. 아이패드의 화면으로 안경을 대체 한 모습은 누가 봐도 머저리 같아 보였을 거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안과에 다니던 아내의 친구가 내 시력에 맞춰진 안경을 들고 공항에 마중 나왔다. 세상에!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이때 이후 해외에 나갈 때는 꼭 안경을 두 개씩 들고 간다. 하나우마 베이에서 내 얼굴을 때린 파도가 준 교훈이다. 안경 없이 지낸 그 나흘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형님이 하와이에 거주하는 한 언젠가는 한 번 더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꼭 다시 가고 싶다. 와이키키 해변과 입에서 사르르 녹는 쉐이브 아이스크림. 맥도날드에서 먹던 밥. 아름다운 하늘 구름과 친절한 사람들. 모든 게 그립다. 별다를 게 없는 지루한 직장생활 중에 라디(Ra.D) 3집에 실린 스윗튠의 <Hawaii>를 들으면 그리움의 감정은 특히나 커진다.
라디 Feat. 이나래 <Hawaii>
Aloha 와이키키 호놀룰루 마키키밸리 탄탈로스
Island 오아후 몰로카이 그 어디라도 꿈만 같은 Paradise
유난히도 맑았던 어느 겨울 이른 아침에 눈부신 햇살에 겨워
마지못해 일어나자마자 서로에게 꼭 안겨
한없이 행복한 얼굴로 우리 앞에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다 그 언젠가 둘이 꼭 한번 가기로 했던
Aloha 와이키키 호놀룰루 마키키밸리 탄탈로스
Island 오아후 몰로카이 그 어디라도 꿈만 같은 Paradise
Aloha 아름다워 발길 닿는 모든 공간들 흘러가는 모든 순간들
Kane Wahine Nami Hawaii
라디는 레이블 리얼콜라보의 수장으로 현재까지 3장의 정규 앨범을 냈다.
그의 3집 [Soundz]에는
뮤지크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를 연상케 하는 미디엄 템포 트랙 <For Me>,
여성 싱어 이나래가 피처링한 <Hawaii>,
세월호 사건의 추모 트랙이라 할만한 <아직도(0416)>,
UMC, KeepRoots, 현상이 피처링한 <1998> 등이 수록됐다.
2014년 7월 발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