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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Mar 26. 2018

구로공단 재즈바

군대 신검 4급을 받았다.


엄마는 신체검사 전날부터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던 탓이었으리라. 엄마는 검사받을 때 몸 안 좋은 곳이 있으면 빼놓지 말고 손을 들고 얘기하라고 했다. 엄마도 참. 나도 성인인데 뭐 그런 주문을 다 하고 그래.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도 나는 나름 효자. 엄마가 시키는 대로 내 몸의 병약함을 군의관에게 어필했다. 


지금이야 20대 초반과 비교하면 20kg이나 몸무게가 불어버린 아저씨가 됐지만, 당시에는 날씬했다. 몸무게 미달로 2급이 나왔다. 초딩 때부터 안경잽이였던 나는 시력검사에서 3급을 받았지만 현역 대상이었다. 문제는 코였다. 유년시절부터 괴롭혔던 축농증을 중학생 때 세 차례에 걸쳐 수술했지만, 성인이 되어 재발이 된 상태였다. 코를 검사하는 시간에 손을 들고 군의관에게 말했다. 


"축농증이 있습니다." 


군의관은 CT 촬영을 해오라고 했다. 같은 시간에 신체검사를 받았던 또래 청년들은 이미 신검을 마치고 현역과 방위역 혹은 면제, 재검의 결과를 받아 들었다.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시무룩했다. 그 시간까지 나는 CT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몇 시간 후, CT 촬영 결과를 보던 군의관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음... 생각보다 많이 안 좋네? 너 군대 가고 싶냐?”


나는 ‘아... 내 몸 상태가 나라를 지키기에 그렇게 모자란 몸뚱이인가...’ 하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렇게 나는 부비동염 4급이라는 신검표를 받고 현역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현역 판정을 받더라도 군대보다는 방위산업체에 다니고 싶어서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허무하게 신검 4급을 받고는 다음날 학원을 때려치웠다. 학원비를 내주신 부모님에게는 지금도 그저 죄송할 뿐이다.


어쨌든 나는 계획대로 방위산업체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반 방위역보다 돈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구로디지털단지'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바뀐 구로공단의 한 공장에 입사했다. 핸드폰을 제조하는 회사였고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지루한 삶이었다. 공장 앞에 위치한 수출의 다리로 핸드폰만 수출할 게 아니라 내 영혼과 정신, 육체 모두 공장 밖으로 수출하고 싶던 날들이다. 


퇴근 후에 동료들과 시끄러운 술집에서 소주를 마시던 어느 날이었다. 부어라 마셔라 하다 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조용히 혼자 음악을 들으며 칵테일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저 멀리 ‘Jazz Bar’라는 간판이 보였다. 구로공단 재즈바.


그때부터 그 구로공단 재즈바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가게 내부에는 트럼펫을 불거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의 흑인 모형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곳은 빌 에반스(Bill Evans)나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같은 재즈 음악이 흐르는 곳이었다. 가끔은 팻 매스니(Pat Metheny)의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따로 신청곡을 받진 않았지만, 듣고 싶은 CD를 가져가면 틀어주기도 했다. 회사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어느 날 재즈바에 들러 사장님에게 나스(Nas)와 우탱클랜(Wu-Tang Clan)같은 거친 사운드의 힙합 CD를 틀어달라고 했지만, 사장님은 두어 곡을 틀어 주고는 “이거는 좀. 오래 못 틀겠네요.”라며, CD를 돌려주기도 했다.


구로공단의 재즈바를 홀로, 때로는 친구와 들락날락하며 그곳의 바텐더와도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 바텐더는 나이 많은 3, 40대 아저씨들만 보다가 20대 초반의 젊은 청춘들을 손님으로 볼 수 있어 반갑다며 우리에게 무척이나 살갑게 대해 주었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지나간 나의 첫사랑과 성은 달랐지만 이름이 같았다. 남자가 여자에게 수작을 부릴 때 가장 한심한 방법 중 하나가 ‘제 첫사랑과 닮았어요.’라지만, 믿기 어렵게도 나는 그녀에게 끌렸다. 첫사랑과 이름이 같은 그녀에게 끌린다는 나의 사연을 들은 친구 녀석은 한심하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이 미친 새끼, 이름 페티시 있냐? 깔깔깔” 


살다보면 무의미한 것에 무수히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우연을 인연이라고 믿을 때가 있다. 단순히 첫사랑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끌린 것만은 아니었지만, 바텐더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흠칫 했던 것은 사실이다. 호감이 갔고 무엇보다 예뻤다. 친구와 같이 바에 앉아 있을 때 나를 빼고 친구와만 대화를 나눌 때는 질투가 나기도 했다. 혼자 가게에 들렀을 때 “친구 분은 왜 같이 오지 않으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는 왠지 싫기도 했다. 그녀는 나에게 항상 친절하고 고운 미소를 보내주었다. 그저 손님에게 베푸는 바텐더 특유의 자본주의 미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때쯤 그녀는 나에게 ‘바보’ 라는 단어를 건네주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바텐더는 절대 밖에서 손님을 만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나와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던 그녀와의 만남은 자연스레 길게 이어가지 못했다. 내가 퇴근하고 전화 통화라도 하려면 그녀는 일을 시작해야만 했으니깐. 나는 주말에 쉬었고 그녀는 평일에 쉬었다. 가게 안에서는 그저 손님과 바텐더의 사이로 지내야만 했다.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할 수 없던 우리였다. 결국 석 달 남짓의 짧은 연애였다. 그렇게 구로공단 재즈바와의 인연은 끝났다. 


가끔 연애든 뭐든 아예 시작을 하지 말았으면 어땠을까 싶은 순간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내 삶의 역사에 이렇게 ‘만약’을 대입시켜보곤 한다. 만약 그때 우리가 연애를 하지 않았더라면, 연인이 아닌 그저 바텐더와 손님의 사이로 지낼 수 있었더라면 구로공단의 재즈바는 재미없는 공장 생활에 지쳐있던 청춘을 오랜 시간 위로해 주었을 것이다. 첫사랑과 이름이 같은 바텐더와도 더 오랜 시간 같은 장소에 머물 수 있었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그 시절 듣던 재즈 음악이나 터보의 <어느 째즈바>가 흘러나오면 20대 초반의 구로공단 재즈바와 젊은 시절의 우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좋아하는 곡이 아님에도 그저 제목 하나만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이름 하나만으로 우연에서 인연을 생각하게 되듯. 그저 곡의 제목 하나만으로 말이다.


터보 - <어느 째즈바>

지난 시간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을 알지만 

아직도 너의 기억 그대로 인데 

아픈 상처들을 안고서 살아갈 순 있지만 

지우긴 너무 힘들어


John Coltrane [Blue 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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