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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사나이

by 이경


TV에 고양이 섬이 나왔다.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다는 일본 아오시마 섬. 사람들은 고양이를 찾아 섬으로 들어가서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뿌린다.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이 그들을 따라다니고, 당연하다는 듯 송창식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중세 독일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동화다. 쥐가 많아 골치였던 마을에서 낯선 피리 부는 사나이가 등장한다. 사나이가 피리를 불자 쥐들이 따라왔고, 사나이는 강가에 쥐들을 빠뜨려 죽인다. 쥐를 해결하고 큰돈을 받기로 했던 사나이는 약속했던 돈의 일부만 받은 채 마을에서 쫓겨난다. 얼마 후 다시 마을을 찾은 사나이는 이번에는 피리로 마을 아이들을 끌어 모은 후 마을을 떠난다.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 속 '피리 부는 사나이'는 누군가를 떼 지어 끌고 다닐 때 사용하는 관용어가 되었다. 나 역시 애견 카페나 생태 공원에 가서는 강아지 먹이나 잉어 밥을 사서 뿌리곤 한다. 그때마다 강아지나 잉어들은 내 손을 떠난 먹이를 찾아 떼 지어 다닌다. 단 돈 몇천 원으로 피리 부는 사나이 코스프레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게도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있었다.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당산동에서 보냈다. 지금의 당산동이야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한 여느 도시의 모습과 같지만, 유년을 보냈던 당산동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당산동을 대표할 만한 랜드마크라곤 넓은 부지를 사용하던 대한통운 정도가 다였다.


대한통운 옆에는 좁은 골목길이 있었고, 그 골목 안에는 가난하고 허름한 집들이 여러 있었다. 나는 그 골목길 구석 끝에 자리 잡은 집에서 자랐다. 여러 세대가 다닥다닥 모인 집이었지만, 어쩐지 거기엔 대문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대문 없는 집'이라고 불렀다.


대문 없는 집에 살아도 아이들은 놀거리를 찾아다닌다. 골목 초입길에 있던 박스 공장의 종이 박스들은 미끄럼틀이 되어주었고, 동네 형들과 나무에 매달린 송충이를 잡기도 했다. 동네에 소독차가 나타나면 그 뒤를 따라다녔고, 싸구려 블록 완구로 미로를 만들어 그 안에 개미를 잡아넣고서는 지켜보기도 했다.


그 시절에 피리 부는 사나이가 등장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근처에 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이를 모를 그는 트럭에 장난감을 가득 싣고서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눠주곤 했다. 가난한 시절을 보내던 아이들은 평소 접하지 못했던 장난감을 받아 들며 매주 그 피리 부는 사나이를 기다렸다.


다만 그가 나눠준 장난감은 성치 않았다. 어딘가 하나씩은 모자라거나 과했다. 부루마블 같은 보드게임에선 게임에서 쓸 종이돈이 빠져 있거나, 로봇 장난감은 팔이 없었다. 눈동자 도색이 잘못돼 귀엽다기보다 공포영화에 나올법한 인형을 여자아이들은 나눠 가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불량의 장난감을 어디선가 구해 가난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던 게 아닐까 싶다.


불량의 장난감이라 하더라도 그 시절 그는 그 어떤 마법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피리를 불며 아이들을 몰고 다녔다. 그의 트럭이 동네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할 무렵 동네 아이들은 하나같이 시무룩해야만 했으니까. 그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한가득 남겨놓고 떠났다. 그가 내게 남겨놓은 추억만큼은 일말의 불량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기억된다.


그때 그 가난하던 아이들에게 불량의 장난감을 나눠주었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이제 완연한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대문 없던 집이 있던 골목길은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에는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송창식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들을 때나 먹이를 나눠주는 사람을 따라다니는 고양이 떼를 보고 있으면 그 시절 유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기대감에 부풀어 웃고 코 흘리며, 장난감을 나눠주던 사나이를 따라다니던 어린아이의 모습이.



송창식 - 피리 부는 사나이 中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 가는 떠돌이

멋진 피리 하나 들고 다닌다


모진 비바람이 불어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멋진 피리 하나 불면서 언제나 웃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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