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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횡단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

by 이경

주말에 일산 원마운트에 들렀다. 원마운트에 가는 이유는 오로지 그곳에 있는 마리오 카트 때문이다. 마리오 카트는 큰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다. 원마운트에 있는 마리오 카트는 실제 차와 비슷한 운전석 모양과 큰 화면을 갖추고 있어서 주말이면 종종 그 먼 길을 오로지 마리오 카트 때문에 가는 것이다.

큰아이 마리오 카트 시켜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대기에 걸려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횡단보도 앞에는 노란색 바탕에 빨간 글씨의 큰 안내문이 있었다. 그 내용인즉슨,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당신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였다.

이건 뭐랄까. 경고문인가, 안내문인가. 노란 바탕에 뻘건 글씨로 쓰였으니, 뭔가 조심하라는 내용 같은데 그 표현이 너무 온순하고 유순하고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단횡단을 하지 말라는 경고라고 보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 이거 이거 이래 갖고 무단횡단 막을 수 있을까 싶은 거다.

나는 무척이나 이기적인 사람이라 보행자일 때는 보행자의 편을 들고, 운전대를 잡으면 운전자 편을 들곤 한다. 다만 보행자일 때든 운전자일 때든 공통으로 싫은 것 중 하나는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이다. 무단횡단이라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생면부지의 타인까지 위협하는 민폐 행동 아닌가.

신호대기에 걸려 안내판 문장을 읽으며, 무단횡단하지 않는 사람을 칭찬할 게 아니라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욕하는 문구를 쓴다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무단횡단 하는 당신의 모습, 이 나쁜 새끼야” 라던가.

“무단횡단 하는 당신의 모습, 에잇 퉷!” 이라던가.

예전에 저기 어디 고속도로에서는 5분 먼저 가려다가 50년 먼저 갑니다, 하는 문구도 본 것 같은데 그 내용이 너무 과격했던 건지 요즘엔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과속과 졸음운전의 위험성을 알린 문장이었던가. 무단횡단이란 것도 30초 먼저 가려다가 30년 먼저 갈 수 있는, 아주 위험천만한 행동 아닌가.

아이를 키우면서는 특히나 길을 건널 때 조심시킨다. 반드시 녹색 불이 들어올 때 길을 건너게 하고, 그때조차도 차가 멈추었는지, 좌우를 둘러보고 길을 건너게 한다. 아이들이 크고 스스로 사리 판단을 하게 되는 날엔 언젠가는 무단횡단 하는 날이 오겠지만 아비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무단횡단만큼은 지양하며 살면 좋겠다.

차가 없고, 바쁘고, 기다리기 힘들면 무단횡단이야 할 수 있겠으나 누구에게라도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될 일이다. 정말 차가 안 다니고 폭이 좁은, 신호등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한 길에서야 문제 될 일은 적겠지만 살면서 ‘무단’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일 중 옳은 일은 거의 보질 못했다.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지 않고 산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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