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 있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작가라면 감정에 다소 휩쓸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반감, 불쾌감, 원한, 책망, 상상, 열정적 항변, 불의에 대한 의식 등의 감정들은 모두 글을 쓰기 위한 훌륭한 연료다. -에드나 퍼버-
책을 쓸 때 가장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단연 평정심에 있다. 오늘 쓰는 책에 비치는 감정이 어제와 그제와 별반 다르지 않아야 하며, 내일과 모레와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은 하루하루가 다르고 그에 따른 감정의 오르내림도 클 텐데, 그런 감정 변화를 티 내지 않으며, 일관된 톤으로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쓰는 일이 내가 생각하는 책쓰기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다만 책이 아닌 일상의 글쓰기에서는 부러 나를 조금 풀어주면서 글을 쓴다. 띄어쓰기나 맞춤법도 책을 쓸 때와는 달리 일일이 검사를 해보지 않고 쓴다. 비문이라고 생각되는 문장도 나중에 다시 읽어보았을 때 눈에 확 드러나는 게 아니라면 고치지 않고 놔둔다. 감정의 휩쓸림 역시 책을 쓸 때와 일상의 글쓰기에서는 확연히 다르다. 다른 사람 인생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라 나와 무관한 일에는 대부분 심드렁한 편이지만, 한번 신경이 곤두서게 되면 사정없이 감정에 휩쓸리기도 한다.
얼마 전 한 글쓰기 플랫폼(브런치)에서 글을 올리자마자 좋아요를 누르는 빌런 Y 씨에 대하여 글을 쓴 적이 있다. Y 씨는 정황상 글을 읽지 않고 좋아요를 누른다는 게 확실했는데, 혹자는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문제를 삼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행동은 무척이나 이기적인 행위가 아닌가.
나는 네 글에 좋아요를 눌렀으니, 너도 와서 내 글을 읽어라 하는 듯한 무작위의 좋아요는, 나는 네 글에는 관심 없지만, 너는 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나는 네 글을 읽을 시간이 없지만, 너는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으라는 심보처럼 보인다. 글이나 잘 쓰고서 그러면 말도 안 해. 글쓰기 플랫폼에서 그런 짓은 궁극적으로 저 자신에게나 나에게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때 일로 감정에 좀 휩싸였고 불쾌감에 반감을 드러냈다. 부러 그에게 수치심을 안겨 주려고 조롱하듯 글을 썼고, 비아냥댔다. 필요하다 싶으면 가끔은 이런 글을 써야 할 때도 있다. 다만 내가 그런 조롱의 글을 썼을 때 나는 그가 사과를 하거나 항변을 할 줄 알았는데, 그는 내 예상을 벗어난 일을 벌였으니 나를 차단해 버린 것이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몰염치의 빌런이었던 것이다.
글을 쓴다고 선비처럼 늘 예의 차리며 좋은 말만 할 필요는 없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는 것은 곧 위선적이며, 거짓나부랭이에 불과하니까. 오히려 좋은 건 좋다, 싫은 건 싫다고 감정을 충실하게 드러낼 줄 아는 게 진짜 작가에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반대로 누군가 내가 쓴 글이나 행동을 비판할 때, 그 비판이 그릇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죽자 사자 달려들어 나를 변호할 필요도 있다. Y 씨가 반성할 줄 아는 이라면 사과를 했을 테고, 자기 행동에 떳떳했다면 항변을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 두 가지 선택지를 모두 놓아버렸지만.
그렇게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며 조롱하는 글을 썼을 때 어떤 이는 글쓰기 플랫폼에서 글 쓰는 사람들 다들 고만고만한데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글을 쓰냐며 나를 탓하기도 했었다. 이 이야기를 주변에 들려주었더니 몇몇 독자와 편집자 분에게 타박을 받았다. 수준 안 맞게 왜 그런 사람들하고 말을 섞냐는 게 이유였다. 아아, 오늘도 나는 나의 독자와 편집자에게 실망을 안겨드렸구나.
아무렴 독자와 편집자의 눈에는, 책 다섯 종 낸 사람과 스스로 자기가 속한 무리를 고만고만한 사람들이라고 일컫는 이나, 라이킷 놀이를 일삼고 자화자찬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보이겠지.
진짜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때로는 감정에 휩싸이며, 고만고만한 무리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타인의 그릇된 행동을 보며 비판하기보다는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며 허허실실 선비 노릇을 할 사람이라면 글쓰기 플랫폼보다는 청학동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책을 쓸 때면 평정심을 유지하되, 평소에는 늘 비판 의식을 가지고 예민하게 굴며 때로 감정의 폭풍 속에 휩싸여도 좋다. 다음 날 일어나서 이불킥을 할 정도로 부끄러운 감성의 글만 아니라면야.
출처 -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다른출판사 / 엮은이 존 위너커, 옮긴이 한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