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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말한 <고독의 의미>

by 이경


이적 5집


본가에 가던 어느 날이었다. 차에서 듣기 위해 집에서 들고 나온 앨범은 이적 5집이었다. 이적은 김진표와 함께 [패닉]으로 데뷔하여 정규 앨범 넉 장을 냈고, 김동률과는 프로젝트 앨범 [카니발]을 냈다. 한상원, 정원영, 정재일 등 명 뮤지션들과는 [긱스]라는 밴드를 만들어 보컬로 참여하였으며, 솔로 앨범도 다섯이나 냈다.


이 정도 커리어면 이제는 이적을 가리켜 가요계를 대표할 만한 고참, 베테랑, 노장, 원로, 선생님, 고인물 등으로 부를 수 있겠다. 보통 한 뮤지션의 커리어가 이렇게나 길어지면 매너리즘이나 나르시시즘에 빠져 서서히 맛탱이 가기 마련인데, 이적만큼은 새 앨범이 나오면 여전히 기대를 가지고 듣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이유는 이적의 곡과 목소리는 놀라우리만큼 드라마틱하여, 커리어가 쌓인다 하더라도 여전히 신선미가 넘치기 때문이다. 이적의 곡이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갖게 하는지 묻는다면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을 보컬로 세워도 기대가 되는 정도이니 말 다한 것 아닌가.


특히 이적 5집에서 정인과 함께 부른 <비포 선라이즈>는 내가 무척이나 아끼고 애정 하는 곡이다. 차에서 CD를 돌릴 때 가끔 와이프는 맘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권유인지 명령인지 모를 아리송한 어조로 “한 번 더 듣자.” 하는데 <비포 선라이즈>를 들은 와이프가 이 말을 하였기에,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비포 선라이즈>를 한 번 더 틀기도 했던 것이다.


이적 5집에서 내가 <비포 선라이즈>만큼이나 좋아하는 또 다른 곡은 앨범 마지막 트랙을 장식한 <고독의 의미>다. ‘그댄 아나요? 내 고독의 의미를’ 하는 아주 진지하고 서글픈 곡인데, 이적의 음색과 가사가 잘 어우러져 우울한 음악을 좋아하는 내게는 취향에 딱 맞는 곡이다.


어느새 차에서 돌린 이적 5집은 한 바퀴를 향해 가고 있었고, 마침내 마지막 트랙 <고독의 의미>가 흘러나왔다. <고독의 의미>를 들으며 가사를 곱씹어보자 이내 내 마음은 센티멘탈 해질랑 말랑 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일곱 살 큰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고독? 고독의 의미?”


“응. 고독. 고독이 뭔지 알아?”


그러자 아들은, “나 고독 알아. 요괴메카드에 고독 나와. 사실은 코독” 이라며 혼자서 깔깔 웃기 시작했다.


아, 그러니까 아들이 뭔지 알고 있다며 아비에게 훼이크를 쓴 고독은 사실 터닝메카드, 공룡메카드에 이어서 나온 요괴메카드의 십이지신 캐릭터 중 개의 캐릭터. ‘난 천하제일의 개코, 본능 전사 코독이다!’ 소리치는 그 코독이었던 것이다.


이적의 <고독의 의미>를 듣고 센티멘탈 해질랑 말랑 했던 나는 그냥 말랑하기로 했다. 코독이라니, 요괴메카드라니. 아이들은 우울한 음악을 듣더라도 유쾌한 웃음으로 치환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는 아이 덕에 우울한 기분에 빠질 뻔한 순간을 모면했다.


아이는 아직 고독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일곱 살 인생을 살면서 고독했던 시기는 있을지언정 고독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일곱 살 큰아이에게는 둘째가 태어나면서 혼자 받던 사랑을 나눠 받아야만 했을 때 전에 없던 고독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아이의 고독은 이내 질투가 되어 요즘 큰 아이는 네 살 터울의 둘째와 장난감을 가지고 다투기도 하고, 아무 일도 아닌 것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고독의 의미>를 들으며 진짜 고독이 아닌 장난감 캐릭터 코독을 소환해낸 아이가 무척이나 순수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훗날 아이가 크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고독감을 느낄 날이 올 것이다. 아이가 진짜로 고독의 뜻과 의미를 알게 되는 날이 곧 오더라도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조금은 덜 고독한 사람으로 자란다면 좋겠다. 언제일지 모를 그 날이 온다면 아이가 나에게서 우울한 기분을 걷어내주었듯이 나 역시 아들의 고독감을 덜어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적 - <고독의 의미> 中


아무것도 몰라요 라고 하기엔

난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것 같네요

허나 아무것도 몰라요 난 그대라는 사람에 관해

어떡해야 그대에 다다를 수 있는지

험한 파도에 휩쓸리는 배처럼

나는 그대와 멀어져만 가네요


그댄 아나요 내 고독의 의미를

그대에게 닿지 못하는 오랜 날들을



요괴메카드 '코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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