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생겨요.'
몇 년 전 돌던 유행어다. 내가 알기로는 유희열이 라디오에서 쓰면서 크게 알려졌던가? 아무리 애를 쓰고 난리 부르스를 쳐도 애인이 안 생길 거라는 못난이들의 자조 섞인 혼잣말로 쓰이거나, 솔로인 타인에게 비수를 꽂을 때 쓰인다. 그래도 안 생겨요, 그러니까 안 생겨요, ASKY 등 여러 변형 문장들이 파생되기도 했다.
이 문장을 접한 혹자는 당신이 뭔데 애인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말하냐며 진지나무 열매를 먹은 듯하는 이도 있었다. 아아, 우리는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각박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유희열이나 그 누군가가 내뱉은 '그러니까 안 생겨요'가 아무렴 그렇게 저주 섞인 말이겠는가. 이왕 안 생길 거 그냥 한 번 웃어넘기자는 거지 뭐.
이런 유행어는 때로는 노랫말이 되고 음악이 된다. 듀오 십센치의 <그러니까...>는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다. 십센치 멤버들이 정확히 <그러니까...>의 탄생 배경을 (내가 알기론) 말 한적은 없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제목과 가사 내용이 딱 그런 이야기다. 그러니까... 안 생겨요.
곡의 소재만 보면 왠지 유쾌하고 재미있고 흥겹고 장난기 넘치는 곡일 것 같지만 웬걸. 세상 진지한 노래라서 듣고 있노라면 퍽이나 우울해지는 곡이다. 아마도 십센치의 곡 중 가장 느린 곡이 아닐까? 곡 후반에 청자의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가사가 일품이다. 십센치의 노랫말이 좋은 것은 이런 반전의 미학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살면서 "안 생겨요."라는 말을 직접 들어본 적도, 누군가에게 해본 적도 없다. 연애라는 것은 성인이 된 후로 처음 했는데 내가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던 이와는 항상 사랑을 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혹은 좋아하는 상대방에게 애인이 있더라도 나는 시간을 들여서 기다리는 사랑을 했다. 그러면 꼭 그 사람과는 사랑을 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내가 딱히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배움이 큰 것도 아니고, 가진 게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상대방은 항상 나의 진심을 알아주고는 사랑을 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사랑이, 연인이 될 수 없었던 그 딱 한 사람은 시간이 흘러 글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십센치의 <그러니까...>를 들으며 우울해질 수 있었던 까닭은 그 딱 한 사람 때문이었을까. 내게도 몇 년간 연애 불구의 기간이 있었다. 그때 주변 지인들은 내게 "안 생겨요."라는 말을 한 적은 없다. 그때 그런 말을 들었더라면 나는 상처를 받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딱 한 사람을 생각하며 그랬을지도 모른다.
다시 생각한다. "안 생겨요."라는 말을 자조의 혼잣말이 아닌 타인에게 듣는다면 모진 농담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상처가 될 거란 생각이 든다. 농담은 듣는 이가 기분 나쁘지 않을 때 비로소 농담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다행히 십센치가 부른 <그러니까...>는 타인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자학의 노랫말이다.
뭐 생기든, 안 생기든 일단 시도는 해봅시다. 복권도 긁어야만 당첨이 되는 것이니, 누군가 호감이 가는 사람이 생긴다면 일단은 호감을 표시해 봅시다. 얼굴 못생긴 저도 좋아하는 이와는 항상 사랑을 했다니까요. 딱 한 사람만 빼고요. 생길지 안 생길지는 그때 가서 확인해보기로 하고. 그래도 안 생기면 그때는 십센치의 <그러니까...> 한 번 듣고 울면 되지 뭐. 시도 안 하면 진짜로 안 생겨요.
십센치 - <그러니까...> 中
너의 마음과 너의 얼굴은
다시 봐도 너무나 눈부시지만
너의 두 손을 결국에 나는
머뭇하다 못 잡을 거야
난 최고 멍청이니까
.
.
노을이 드는 낡은 창가에
걸터앉아 네 얼굴을 생각했지
환한 얼굴의 나와는 다른 슬픈 표정
우리 둘은 이뤄지지 않을 거야
우리 둘은 행복하지 못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