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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셔플의 위험성

안마 의자에서 음악을 듣다가...

by 이경
김동률 2집 [희망]


음악이 담긴 매체(CD, 바이닐, 카세트테이프 등)가 형체가 없는 음원으로 변한 뒤 청취의 방법도 변했다. 대표적인 게 가지고 있는 음원 중에서 무작위로 음악을 트는 셔플(Shuffle) 재생이다.


나는 보통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다. 가끔 셔플로 음악을 들을 때는 두 손이 자유롭지 못할 때다. 가령 설거지를 할 때라던가, 샤워를 할 때처럼 말이다. 셔플이란 게 말 그대로 무작위로 음악을 트는 거다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음악이 나오면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매정한 셔플 DJ는 때로는 나를 갑작스럽게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얼마 전 본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본가에는 커다란 안마 의자가 있다. 본가에 가면 나는 장시간 그 안마 의자에 몸을 맡긴다. 안마 의자에는 케어, 수면, 스트레칭, 회복 등 여러 가지 모드가 있는데 나는 주로 수면 모드를 해놓고 잠을 잔다. 안마 의자를 수면 모드로 설정해 놓으면 신기하게도 정말 잠이 온다. 안마 의자에는 무중력 기능이란 것도 있어서 의자가 뒤로 젖혀지면 나는 편하게 공중에 떠 있는 듯 누워 마사지를 받는다. 천국이 따로 없다.


안마 의자는 안마 외에도 몇 가지 기능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블루투스 스피커 기능이다. 그날은 가지고 있는 휴대폰 블루투스를 안마 의자와 연결하여 음악을 들었다. 두 손이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평소처럼 셔플로 음악을 재생시켰다. 안마 의자 스피커는 뒤통수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어서 마치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음악처럼 들리기도 한다.


셔플로 음악을 설정해놓고 안마를 받으니 때로는 우효가 애절한 음색으로 노래하기도 하고, 때로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이 나오며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기도 하는 듯했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서서히 잠이 들려던 순간 김동률의 <2년만에>가 흘렀다.


김동률 - <2년만에> 中


2년만에 다시 이렇게 돌아왔는데

이만큼만 기다리면 됐는데

곁에 없다는 게 그렇게 그대 힘들었나요

그럼 나는 쉬웠을까요


생각이 잘 안 나요 마지막 모습이

내 눈물이 마중 나온 사람들을 모두 가려서

아무 말 못 하고 괜히 어색하게

서둘러 돌아선 게 마지막이죠


<2년만에>는 전람회로 데뷔했던 김동률의 솔로 두 번째 앨범 타이틀 곡이다. 김동률이 버클리 음대 유학하던 시절 발표한 곡이었던가. 어디론가 떠나고 2년 만에 돌아오는 그 사이의 이별을 노래한 곡이다. 실제 유학을 떠났던 김동률의 사연을 생각하면 곡의 소재는 분명 유학 시절의 이별가라 믿는다. 하지만 <2년만에>라는 제목 때문이었을까. 발표 당시에도 그렇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 곡의 소재를 유학이 아닌 군대로 생각하며 듣곤 한다. 군 복무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지만 <2년만에>가 발표됐던 당시에는 육군 기준 2년 2개월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다. 딱히 가사에 유학이나 군대라는 단어가 없으니 해석은 청자의 몫이겠다.


김동률 보컬의 최대 강점이라면 묵직한 저음이다. 이런 든든한 저음으로 세상이 무너지는 듯 이별 노래하면 이건 분명 반칙인 거지. <2년만에> 역시 그런 반칙성의 트랙이다. 데뷔 후 줄곧 발라드 음악을 선보였던 것에 반해 <2년만에>는 알앤비 느낌이 물씬 나서 그 의외성에 유독 좋아하는 트랙이기도 하다.


나는 군대라고 해봐야 한 달 간의 훈련소 생활이 다다. 나머지 군 복무기간은 방위산업체로 보냈다. 군대에 비할바는 아니겠지만 방위산업체 역시 나름의 고충은 있다. 주말도 휴일도 없이 야근하다 보면 사람 만날 시간이 없다. 그게 여자 친구라도 말이다.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면서 첫사랑과 이별을 겪었다. 나는 유학을 떠난 것도, 군대를 떠난 것도 아니었지만 2년이라는 방위산업체 기간을 생각하며 첫사랑과 헤어지던 그 날 김동률의 <2년만에>를 들었다. 방구석 방바닥에 누워 베개를 적시며 그렇게 <2년만에>를 들었다. <2년만에>는 내게 첫사랑과의 이별가인 셈이다.


음악에는 타임머신 기능이 있어서 듣고 있으면 그 시절의 나로 돌려놓는다. 편하게 안마 의자에 몸을 맡기고 음악을 듣던 나는 예상치 못한 셔플 DJ의 선곡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뒤통수에서 전해오던 김동률의 음색은 여전히 묵직하면서도 반칙이었다. 나는 그날 김동률의 <2년만에>를 차마 다 듣지 못하고 다음 곡으로 넘겨야만 했다. <2년만에>가 흘러나오기 전까지 안마 의자에 누워 음악을 듣던 나는 순간 천국에서 나락을 경험했다.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채 들려오는 그 시절의 이별가는 이렇게나 위험하다. 음악 셔플이 이렇게나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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