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많이 사는데, 만화책을 제하고는 1년에 완독 하는 책이 10종도 안 될 거 같다. 집중력이 출타한 인간의 독서라는 것은 이 모양 이 꼴이다.
봉부아의 <그걸 왜 이제 얘기해>는 짧은 시간 안에 완독 한 소설이다. 인서타에 리미트가 걸릴 정도로 책 이야기를 주절주절 쓸 수 있겠지만, 그냥 재밌었다, 추천한다, 정도로 마무리해도 되지 않을까. 이번 책도 되게 잘 팔릴 거 같은데, 다른 사람이 쓴 책 이야기를 해봐야 나의 배알이나 꼬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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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냥 기억에 남는 거 좀 이야기해 보자면, 줄거리는 애국보수의 성지 대구를 미워하는 반기독교인 여성과 동네 동성 친구 간의 사랑을 다룬 퀴어 소설임.
헤헷, 뻥입니다...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시작으로 첫 책이 나오는 그 사이의 일을 다룬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소설 도입부에 등장하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하는 문장이 책에 두 번 등장하고, 소설의 제목으로 쓰인 '그걸 왜 이제 얘기해'가 세 번 나온다. 더 나왔을지도 모르고.
출간 계약과 첫 책 출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지만,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이야기는 많이 안 나온다.
대신 작가의 친구들(세진 미진 미영)이나 남편, 아이들, 아랫집 할머니, 미용실 사람들, 야채 파는 트럭 기사 같은 주변인들과 고양이, 친구의 강아지. 또 정수기, 고장 난 세탁기나 전자레인지, 실내용 자전거 같은 살림살이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야말로 일상에서 글감을 만들어낸 소설. 읽으면서, 글을 쓰고 책을 쓰는 건 이런 사람들이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어 져서, 내 글쓰기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고.
소설 안에서 글을 쓰는 이야기는 많이 안 나오지만, 작가가 보고 듣는 주변의 소소한 하나하나가 모두 '글'로 확장되어 가는 느낌. 그냥 읽으면서, 이 사람 작가네, 작가. 그런 생각.
가장 재미났던 부분은 출판사 대표와 대표의 남편, 그리고 작가 셋이서 '글의 의미'를 두고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같은 글을 두고서 출판사 대표와 남편이 이견을 보이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 이 에피소드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을 끌어온 것도 좋았고.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서 메타포로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을 꼽으라면, 친구 세진이 작가를 떠나 대구로 이사를 가는 장면. 나는 작가를 떠나는 세진이 마치, 작가만의 것이었던 '글'이 작가를 벗어나 대중에게 떠나는 '책'처럼 느껴졌다.
'오랫동안 나의 세상이었던 한 존재가 내게서 멀어져간다.'
블로그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며 글을 써오던 사람이 책을 내는 순간, 그 글은 이제 작가만의 글이 아니니까. 오랜 친구 세진이 작가를 떠나고, 새로운 친구 미진이 생겨나는 것에서, 작가의 글뭉치 하나가 책으로 만들어지고, 새로운 글거리가 찾아오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몰라. 작가의 의도는 어떤지 모르겠고, 나는 그렇게 느꼈다구.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이 제일 좋았다구.
오랫동안 나의 세상이었던 한 존재가 내게서 멀어져간다.
데뷔작 <다정함은 덤이에요>도 그랬지만 끊임없이 타율이 높은 유머를 치고, 전작보단 덜하지만 많은 괄호를 쳐가면서 작가는 독자를 웃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찌질함도 있고 쓸쓸함도 있고 공허함도 있고 사회의 아픔도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끼어넣은 소재들이 아니라, 억지스럽지 않아서 좋았고 나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다 작가적 고민처럼 보여서 또 좋았다.
남편과의 티키타카도 좋고, 교회를 권하는 친구에게 '인샬라'라고 대답하는 것은 유머센스가 없다면 불가능한 거겠지.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내면 언젠가는 살면서 봉부아 작가님도 한번 뵐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올여름 도서전에선 온라인으로만 알고 지내던 김설, 황보름, 김혼비 작가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만나면 유머 감각을 좀 배울 수 있으려나.
소설에 등장하는 56번가 카페에 가면 봉부아 쌤을 볼 수 있나요.
책 보면서 이거 시트콤으로 만들어져도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훗날 이 작품이 정말 영상화가 된다면 나는 너무 부럽고 배가 아파서 배를 움켜쥐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