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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Apr 14. 2024

그레이트 코멧과 신토불이 떡볶...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을 봤다.


내가 문화 소비자로 가장 취약한 부문을 꼽으라면 그중 하나는 분명 로씨아 문학일 것이다. 로씨아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뿐더러 딱히 막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아직은 없다. 최근 2, 3년간엔 몇몇 로씨아 소설을 건드려봤으나 무엇 하나 완독하지 못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앞 30여 페이지만 세 번 정도 읽다가 때려치울 정도...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란다. 19세기, 정확하겐 1812년 배경. 나는 지금껏 <전쟁과 평화>를 단 한 페이지도 읽어보질 못했는데도 이 뮤지컬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무대가 굉장히 독특하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로씨아 문학에 취약한 만큼 뮤지컬을 보면서 이야기의 맥을 짚느라 좀 힘들었는데, 그러니까 이게... 나타샤가 전쟁 통에 군대 간 남친 버리고 고무신 거꾸로 신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것도 이제 날라리 같은 유부남 아나톨에 빠져가지고?


여하튼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고 무대는 소문만큼 정말 독특했다. 나는 유니버설아트센터를 이전에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헤맨 거 보면 처음 가본 것이 분명한데, 극장이 되게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느낌.


<그레이트 코멧>이 관객 참여형의 같이 박수도 치고, 소리도 지르고, 배우들이 말고 걸고 한다는 뮤지컬이라는데, 그런 게 부담스러운 관객이라면 '발코니석'이 좋은 선택이 될 듯. (발코니 석에서 봤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공연 도입부에 배우들이 말 걸어도 놀라지 말라고 얘기하고, 배우들이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나타나서 하이파이브도 해준다능. 발코니석에도 배우들이 나타나긴 하는데, 아래 무대에 비하면 작품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볼 수 있고 무엇보다 다리를 길게 뻗을 수 있었어 좋았다능.


작품 자체는... 이게 모든 대사를 노래로 부르는 음악극이라, 여기서 오는 피로감이 상당함. 뮤지컬 보면서...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혐오>가 떠오를 정도. 물론 뮤지컬이 혐오스러웠단 얘기는 아니고. 취약한 로씨아 이야기에 모든 대사를 노래로 처리하니 몹시 피곤...



하도권 피에르, 유연정(우주소녀) 나타샤, 정택운(빅스) 아나톨이었다능. 이제 아이돌 출신들이 뮤지컬에서 메인을 맡는 건 흔한 일이 되었는데, 나는 이거 괜찮은 거 같음. 출신이 아이돌이고 자시고 간에 다들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눈도 즐겁고. 근데 하도권이 진짜 잘하긴 잘하더라능. 발성이랑 딜리버리가 대단했다... 듣다 보니까 계속 듣고 싶은 목소리...


<그레이트 코멧> 6월까지 한다는데, 그 후에는 어떤 작품이 올라올지 몰라도, 유니버설아트센터는 나중에 한번 더 가고 싶네.


뮤지컬 보기 전에 서울 3대 떡볶이집(이라고 부르던데 모르겠습니다...) 신토불이 떡볶이집에 가봤는데 웨이팅이 많아서, 맛만 보자 하고 1인분만 포장을 함. 근데 먹을 데는 마땅찮고, 공연 시간은 다가와서 이거이거 어쩌나,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먹어야 하나, 길 가면서 하나씩 주워 먹어야 하나 어쩌나 저쩌나 조마조마했는데, 극장 근처에 편의점 테이블이 있어서 급하게 후다다닥 먹어보았다능. 서울 3대 떡볶이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맛인지는 모르겠는데, 아차산역 가는 분들은 다들 이 떡볶이를 드시길래, 저도 한번 먹어보았다는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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