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두루두루 살피는 일
유머는 혐오는 한 끗 차이
책에서도 한번 다루었던 이야기인데, 누군가를 울리는 글보다 누군가를 웃기는 글이 훨씬 어렵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인지상정(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나 감정)이라는 말도 있듯이, 누군가에게 글로써 슬픈 감정을 전달하는 기제는 어느 정도 보편성을 띠는 듯하다. 소설 창작으로 예를 들자면, 독자들이 등장인물에 애정을 갖도록 만들어놓고서 뒤에 가서 죽여버리면 그만이지.
더불어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 것에는 이런 보편성뿐만 아니라 다양성까지 지니고 있는 듯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만 보더라도 사람들을 불행하고 슬프게 만드는 것에는 아주 다양하게 각자의 이유가 있다. 그만큼 사람이란 살아가면서 쉽게 상처받는 약한 존재라는 이야기도 될 테고.
반면에 글로써 누군가를 웃기는 일은 훨씬 어렵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유머 코드'라는 게 정말이지 다르기 때문이다. TV 프로그램을 예로 든다면 누군가는 말로 웃기는 개그를 좋아할 수도 있을 테고, 누군가는 슬랩스틱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 누군가는 콩트를 좋아할 수 있을 테고, 누군가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보며 웃을 수도 있을 테고.
그러니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슬픔이 아닌 웃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뾰족함을 필요로 한다. 모두를 웃게 만드는 글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웃자고 쓴 글에 정색을 보이는 이들도 수두룩 빽빽이다. 특히나 PC(정치적 올바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에는 웃음과 혐오가 한 끗 차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하하호호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내용을 누군가는 혐오로서 인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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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쓰기 강사의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맞춤법을 가르치며, '낳다'와 '낫다'의 차이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 수단으로 글쓰기 강사는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한 질문자와 답변자의 글을 예로 들었다.
질문 - 입문계가 낳나요? 시럽계가 낳나요?
답변 - 질문자 맞춤법을 보아하니 실업계가 나을 듯합니다.
글쓰기 강사는 이렇게 온라인에 올라온 질문자의 틀린 맞춤법을 예로 들며 수강생들에게 낳다와 낫다의 차이를 알려주었고, 일부 수강생들은 강사의 강의에 하하호호 웃으며 반응하였다. 수강생들에게 옳은 맞춤법을 전달하기 위해 온라인에 올라온 틀린 맞춤법을 예로 든 것은 효과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수강생들이 웃어넘긴 것처럼 많은 사람들 역시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는 강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사람들의 웃음 코드는 모두 다르고, 요즘에는 PC가 만연한 세상이다.
'입문계가 낳나요, 시럽계가 낳나요'라는 질문에는 '낳다 / 낫다'의 오류뿐만 아니라 '입문계', '시럽계' 등의 맞춤법 오류가 보인다. 그러니 인터넷에 이런 질문을 올린 사람은 어쩌면 일부러 틀린 맞춤법으로 어그로를 끌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고, 혹은 오랜 외국 생활로 우리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질문에 따른 답이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보인다는 점이다. 맞춤법을 틀린 질문자에게 실업계를 추천하는 내용의 맞춤법 강의를 보며, 나는 따라 웃지 못할 사람들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만약 내가 본 맞춤법 강의 현장에 실업계 출신의 수강생이 있거나, 혹은 실업계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가 있었다면 그들도 똑같이 웃을 수 있었을까? 맞춤법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괜히 마음에 상처를 받진 않았을까? 맞춤법을 잘 모르면 실업계를 가는 건가요? 하고서 항변하고픈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까.
이처럼 글쓰기(말하기)는 어느 한쪽만이 아닌 사방팔방을 두루두루 살펴야 할 일이다. 특히나 상대에게 웃음을 유발하려는 글(말)은 더욱 그렇다. 100명 중 90명을 웃길 수 있는 글이라 하더라도 나머지 10명이 상처를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90명을 위해 그런 글을 쓰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작가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겠지만, 이런 고민을 많이 해보는 것만으로도 훨씬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틀린 맞춤법을 가르치기 위해, 실업계를 희화화하는 듯한 강의가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 같이 하하호호낄낄낄 웃으며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고, 또 그렇게 웃으며 강의하는 게 수강생들에게 효과를 보인다고 생각하여 수단으로 여긴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될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사람들의 유머 코드는 모두 다르고, 누군가를 웃기기 위한 글은 그만큼 어렵고도 위험하다는 걸 이야기하고픈 것이니까.
뭐 저라면 굳이 낳다/낫다를 가지고 그렇게 가르치진 않을 것 같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