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꼬박꼬박 내 돈 내고 먹으며 깨달은, 진짜 맛의 민낯
요새 들어 음식과 맛집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강의를 두어 차례 하게됐다.
새삼 고민이 깊어진다.
뻔한 TV 맛집 타령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왜 화려한 유명 식당보다 골목 어귀의 밥집을 더 아끼는지 설명해야 했으니까.
친구 녀석에게야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야, 거기 기가 막혀. 꼭 가봐."
한마디면 족하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글로, 말로 맛을 논한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나의 기준을 발가벗겨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켜면 온통 맛집 천국이다.
누구나 쉽게 별점을 매기고 칼을 휘두르듯 평가를 내린다.
그런 풍경을 볼 때마다 우린 스스로에게 되물어 봐야 한다.
"우리는 정말 맛이라는 놈을 제대로 알고 떠드는 걸까?"
흔히들 착각한다.
맛은 혀가 느끼는 감각이라고.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이 다섯 가지가 전부라고 믿는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맛은 훨씬 입체적이고 교활하다.
코를 막고 음식을 씹어보라.
고무 씹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감기 걸렸을 때 천하의 진수성찬도 맛없는 이유다.
코로 스며드는 향,
튀김이 부서질 때의 경쾌한 파열음,
칼질할 때 손끝에 전해지는 고기의 저항감,
혀에 닿는 아이스크림의 차가운 온도까지.
이 모든 것이 합쳐져야 비로소 맛이 완성된다.
어디 그뿐인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옛말은 뇌과학적으로도 참이다.
정갈한 담음새, 식당의 조도, 창밖의 날씨,
그리고 누구와 마주 앉았는지까지. 그날의 공기(空氣)가 맛을 결정한다.
완벽하게 객관적인 맛의 기준 같은 건 세상에 없다.
다만, 좋은 음식의 교집합은 분명 존재한다.
재료가 싱싱한지, 불 조절은 적당했는지,
간이 널뛰지 않는지, 식감의 조화가 맞는지.
이런 건 꽤나 객관적인 영역이다.
생선이 비리지 않은지, 면이 퍼지지 않았는지 따위는 누구나 안다.
함정은 취향이라는 변수다.
누구는 입에서 녹는 고기를 찾고, 누구는 씹는 맛을 즐긴다.
짠맛을 즐기는 이가 있고 슴슴함을 즐기는 이가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비 오는 날 당기는 맛과 볕 좋은 날 당기는 맛이 다르다.
그러니 내 입에 맞다고 남에게도 정답일 순 없다.
글을 쓰다 보니 여기저기서 달콤한 제안이 온다.
공짜 밥 주겠다, 원고료 주겠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나는 단 한 번도 그 유혹에 넘어간 적이 없다.
지금도 꼬박꼬박 내 카드를 긁는다.
물론, 단골집 이모님이 슬그머니 얹어주는 계란말이 한 접시 정도야 웃으며 받는다.
하지만 내 돈을 내야 내 마음이 편하고, 내 글이 비겁해지지 않는다.
돈 내고 먹었으니 혹평도 자유롭게 할 것 같나?
오히려 반대다.
맛없는 집은 아예 글로 쓰지 않는다.
그게 누군가의 치열한 생계이자 밥줄이기 때문이다.
내 입에 안 맞다고 해서 남의 밥그릇을 걷어찰 권리는 내게 없다.
나는 최소한 두 번은 가본 뒤에 펜을 든다.
첫 방문의 느낌은 믿을 게 못 된다.
주방장이 부부싸움을 했을 수도 있고,
내가 숙취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두 번째 방문이야말로 우연과 변수를 걷어내고
식당의 기본값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하나 더, 친절은 평가에서 뺀다.
서비스는 물거품 같다.
바쁜 점심시간과 한가한 오후의 접객이 같을 수 없고,
알바생의 기분까지 내가 알 순 없으니.
나는 오롯이 접시에 담긴 것만 보려 노력한다.
가볍게 던진 "맛없어요"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폐업 신고서가 될 수 있다.
주방장의 굳은살과 사장님의 뜬눈으로 지새운 밤을 생각한다면,
정말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본질에 집중한다: 재료, 조리, 균형.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본다.
취향을 고백한다: "저는 슴슴한 평양냉면 파라서..."라고 밑밥을 깐다. 그래야 읽는 이가 자신의 입맛과 견주어 판단할 수 있다.
단정 짓지 않는다: 한 번의 경험으로 식당의 전부를 재단하지 않는다. 꾸준히 지켜보며 평균을 찾는다.
맛은 혀가 아니라 기억으로 먹는 것이다.
어릴 적 할머니가 끓여주신 투박한 된장국이
미슐랭 스타 셰프의 요리보다 맛있게 느껴지는 건,
그 안에 추억과 사랑이라는 마약같은 조미료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건 즐거운 놀이다.
하지만 잊지 말자.
우리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그 대상이
누군가의 꿈이자 인생이라는 것을.
조금 더 겸손하게, 조금 더 따뜻하게 맛을 논한다면
우리의 식탁은 더 풍성해질 것이다.
난 오늘도 투덜여사와 오늘 저녁은 어디에서 뭘 먹을지 행복한 계획을 한다.
오늘도 당신의 한 끼가 맛있는 위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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