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호떡 앞에 서면 모두가 미식가

기름 없이 담백하거나, 고집으로 쫄깃하거나. 여섯 호떡집의 기록.

by 까칠한 한량

국민학교 시절 겨울 방학때면

호떡은 바로 그 행복의 시작이었다.

70년대 말, 돈 몇 푼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우리 가족의 사치, 그것이 호떡이었다.


7,80년대 우리네 겨울 저녁의 중심에는 늘 그 뜨거운 냄새가 있었다.


가끔은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들고 오시거나,

아니면 저녁밥을 먹고 출출해질때 아버지에게 졸라

백 원짜리 몇 장을 받아 들고 동네 앞 버스 정류장 앞까지 냅다 뛰어가서는

식구 수대로 주문을 하고는 호떡이 완성되기까지 호떡 아붐마의 기름진 손만을 보고 있다

받아 들고는 냅다 집으로 다시 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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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서는 봉투를 가운데 주욱 찢어

숨 죽어 힘빠진 뜨거운 호쩍을 입술이 데는 줄도 모르고 먹어치웠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시름 없던 작은 황금기였다.


온 가족이 뜨거움을 공유하며 나누던 그 호떡 한 조각이 바로,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평화였던 셈이다.



그 기억 때문에 여전히 찬 바람만 불면 호떡집 앞을 서성인다.

세상은 겉만 번지르르하게 흉내 낸 가짜들로 넘치지만,

아직도 그 옛날의 고집과 온기를 지켜내는 진짜배기들이 있다

내 발길을 멈춰 세운, 내 돈을 아깝지 않게 한 녀석들을 이제부터 소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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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성장 호떡: 무릇, 담백해야 오래가는 법


기름에 번지르르하게 굽지 않는다.

담백한 밀가루 반죽과 속의 꿀로만 승부한다.

덕분에 두어 개를 먹어도 속이 편하다.

이게 중요하다. 많이 먹어도 뒤탈 없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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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인생도 그래야 하는데.....


호떡 하나 들고 굽이치는 장터 구경 한 바퀴면, 하루의 시름은 이미 반쯤 털린다.



2. 성북구 정릉 시장 남기남 호떡: 고수는 쉬운 길을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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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 이쁘지 않다.

만들때 옆구리가 살짝 터지기도 한다.

45년 전통 호떡집인데 왜?


이유가 있다.


수많은 집들이 다루기 쉬운 강력분을 택할 때,

이 집은 중력분을 고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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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모양 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식어도 질겨지지 않는 본질을 지켜냈다.

사흘을 냉동실에 넣었다 꺼내도 렌지에 살짝만 돌리기만해도

맛이 살아있다니, 이건 재주가 아니라 철학이다.


쉬운 길은 편하지만, 결국 호떡은 식으면 질겨지고 굳는다.

어려운 길을 고집해야 오래도록 부드럽고,

언제든 다시 데워 먹을 수 있는 온기를 유지한다.




인생도 그렇다.

남기남 호떡에서 삶의 이치를 배운다.



3. 포천 장터 호떡: 이 놈의 쫄깃함은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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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장에 갔다. 녹두전이 정말 끝내주게 유명한 곳 옆에, 유독 줄이 긴 호떡집이 있다.

녹두전을 먹어야 하기에 조심스럽게 호떡 두 개만 산다.


줄... 유명세가 아니라 맛으로 서는 줄은 기꺼이 기다려야 한다.


이 집 호떡, 확실히 다르다. 반죽의 비법이 궁금하다.

식어도 쫄깃함이 살아있고, 입에 달라붙지 않는다.


한국 호떡의 부드러움과 중국식 호떡의 찰기를 절묘하게 섞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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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에 대한 깊은 이해, 숙성 온도, 그리고 누름쇠로 눌러

구워내는 시간의 절제가 만들어낸 결과물일텐데. 많이 다르다..


겉모습은 투박해도,

입안에서 느껴지는 식감은 섬세하기 짝이 없다.


호떡 장인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4. 연신내 할머니 쑥 호떡: 천 원짜리 세월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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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 아직도 천 원짜리 호떡이 존재한다는 건,

할머니가 시간의 흐름을 멈췄다는 뜻이다.

호떡 하나가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데려다주는 타임머신이다.


쑥향이 올라오는 순간, 꿀의 끈적한 단맛은 정갈하게 다듬어진다.

할머니의 쑥 호떡은 쑥향이 단맛을 줄여준다.

지나친 달콤함은 금방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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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단맛도 마찬가지다.

은은한 향처럼, 오래도록 기억되는 맛이 진짜다.


5. 종로 3가 송해거리 녹차 호떡: 트렌드에 몸을 맡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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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호떡이라, 기가 막힌 발상 아닌가.

녹차가 가진 쌉싸름함이 전통 호떡의 단맛을 깨끗하게 씻어낸다.

또 자리도 좋다...송해거리라니....호떡 사먹기 딱 좋은 위치


유행에 휩쓸려도 본질을 잃지 않는 것.

녹차를 넣었어도, 그래도 여전히 호떡이다.

전통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젊은 피를 수혈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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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의 밤거리처럼, 끊임없이 변해야 살아남는다.


6. 노량진 양자 호떡: 청춘을 위한 당 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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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에서 호떡은 단순한 간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허기진 청춘들의 비상식량이요,

아쉬움의 문턱에서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위로의 땔감같은 것 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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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호떡 한 입이 주는 달콤함은 지친 뇌를 깨우고,

다음 시험까지 버티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맛도 좋다...청춘들이 만들어서인지 더 달고, 더 뜨겁다.

인생의 가장 뜨거운 시기를 호떡이 응원하는 모양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미식은 없다.


급 호떡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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