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12월31일,
그리고 변치 않는 해돋이 약속

파뿌리 맹세보다 소중한, 내일 더 아껴주겠다는 담백한 다짐

by 까칠한 한량

어느덧 그녀와 네 번째 12월 31일을 함께 보냈습니다.

오십 줄에 만나 사랑을 다시 배운다는 게 처음엔 돋보기 쓰고 바늘귀 꿰는 것처럼 더디고 어색했는데,

이제는 제법 손발이 맞는 노부부 흉내를 내고 있네요.


우리가 함께한 네 번의 연말을 가만히 복기해 봅니다.

처음 두 해는 우리도 남들처럼 해보자며 호기롭게 서울 근교에서 데이트를 하고 광화문으로 향했지요.

제야의 종소리를 직접 듣겠다고 그 인파 속에 섞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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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 틈에 끼어 카운트다운을 외칠 때는 십 년은 젊어진 듯 신이 났지만,

찬 바람은 어쩔 수 없이 무릎 시린 나이임을 일깨워주더군요.

서로를 놓칠세라 꼭 잡은 두 손이 로맨스 때문인지,

아니면 빙판길에 넘어지지 않으려는 생존 본능 때문인지 헷갈려하며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다음 두 해는 전략을 바꿨습니다.

"이제 사람 많은 곳은 힘에 부친다"는 그녀의 솔직한 말에,

우리는 뜨끈한 강원도 숙소를 잡아 일출을 보기로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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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해돋이 여행이라지만, 짐 가방 속엔 핫팩 열 개와 비상용 소화제,

각자의 영양제가 먼저 자리를 잡는 현실적인 여행이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건 2023년 첫 일출을 함께 맞이하던 순간입니다.


덜덜 떨리는 입술로 후후 불어가며 믹스커피를 나눠 마시던 그때,

우리는 꽤 중요한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같은 거창한 거짓말은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미 둘 다 파뿌리가 희끗희끗 보이기 시작한 마당에 그런 비현실적인 맹세가 무슨 소용일까요.


20241231_190817.jpg 우리는 매년 마지막 날, 서점에 가서 서로 책을 선물한다. 작년에 그녀가 사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대신 우리는 아주 담백하고도 어려운 약속을 했지요.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아주 조금만 더 아껴주자"고 말입니다.

그 약속, 참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깜빡하고 안경을 놔두고 외출한 날,

짜증 대신 슬그머니 차를 그녀의 집쪽으로 돌려주는 마음.


그녀가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할 때 말없이 전기장판 온도를 올려주는 손길.

그런 흔하디 흔한 일들이 모여 우리의 내일 더 사랑하는 법을 완성해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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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다섯 번째 연말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가 곁에 있을지,


지금 당장의 거창한 맹세는 봄에 호주를 10일에 걸쳐 다녀오기로 해서 지금부터 스케줄 정리중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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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영혼의 맹세보다는,

당장 내일 아침 상대방의 컨디션을 살피며 따뜻한 물 한 잔을 먼저 건네는

오늘의 정성이 더 귀하다는 것을 삶속에서 배워 왔기에 안 오를도 내일 더 아겨주기위해

사랑을 배웁니다.


물론 그녀가 더 노력하는걸 알지요....


어느덧 59세가 된 6년 차 늦깎이 커플, 오늘도 사랑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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