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숙의 온기 위에 쌓아 올린 인생의 맛, 강릉 벌집
강릉에는 이른바 ‘3대 장칼국수’라 불리는 성지들이 있다.
누군가는 어디가 더 맵네, 어디가 더 면이 쫄깃하네 하며 우열을 가리지만,
내 발걸음은 결국 이곳 ‘벌집’으로 회귀한다.
강릉의 숱한 장칼국수 집을 다녀본 끝에 내린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확신에 찬 넘버원이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세월의 때가 묻은 구옥의 정취가 먼저 반긴다.
이곳은 원래 여인숙이었다고 한다.
낯선 나그네들이 고단한 몸을 뉘이던 방들은 이제 뜨끈한 국물로 속을 달래는 식탁이 되었다.
공간이 품은 특유의 낮고 아늑한 공기 때문일까, 기다림마저 설렘으로 변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내어주는 묵은지 한 접시. 이 집의 진짜 사고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장칼국수가 나오기도 전에 공기밥 한 그릇을 주문해 묵은지를 척 걸쳐 먹는다.
아삭하고 시큼하게 잘 익은 김치 한 점에 밥 한 술.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이미 한 그릇을 클리어하게 만드는 이 묵은지는 그 자체로 완벽한 서막이다.
직접 빚어낸 면발은 투박한 듯하면서도 입술에 닿는 촉감이 놀라울 정도로 보드랍다.
여기에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국물은 칼칼하면서도 뒷맛이 묵직하게 남는다.
면발의 부드러움과 국물의 묵직함이 입안에서
엉키며 내는 조화는 '벌집'만이 가진 고유한 인장이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면을 다 건져 먹은 후다.
이미 묵은지와 밥 한 그릇을 비웠음에도,
남은 국물을 보면 다시금 밥을 말지 않을 재간이 없다.
칼칼한 국물에 밥알이 코팅될 때쯤 다시 묵은지를 올린다.
면과 밥, 그리고 김치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이 순간만큼은 다이어트 같은 세속적인 걱정은
먼지처럼 사라진다.
행복한 포만감을 안고 숙소가 있는 경포 해변으로 향한다.
예전 여인숙 시절 이곳에서 잠을 청했던 이들도 이런 든든한 위로를 꿈꾸지 않았을까.
입안에 남은 칼칼한 여운과 동해의 짠 바람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하면 그만이다. 오늘 나는 인생의 맛 하나를 더 채웠으니까.
벌집 강원 강릉시 경강로2069번길 15
#까칠한한량의미식만담 #강릉맛집 #벌집장칼국수 #강릉3대장칼국수 #인생맛집 #묵은지의유혹 #강릉노포 #다이어트포기맛 #여인숙의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