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세상은 우리의 꿈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우리의 10년 연애는 양가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라는, 너무나 현실적인 벽을 넘지 못했다.
서로의 집안은 너무나 달랐다. 한쪽은 대대로 학자 집안이었고, 다른 한쪽은 장사를 하며 살아온 집안이었다. 학벌도, 재산도, 심지어 살아온 방식도 모든 것이 달랐다.
어른들의 세상은 우리의 사랑만으로는 건널 수 없는 강이었다.
사랑한다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무게가 있었다. 결혼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그제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몇 달 동안 우리는 설득해보려 노력했다. 그녀는 눈물로, 나는 논리로.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 나빠져만 갔다. 양쪽 부모님 모두 완강했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이렇게 힘들게 시작하는 결혼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그녀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포기하면 안 돼."
나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내 마음도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헤어지기로 한 마지막 날이 왔다.
우리는 대학로의 허름한 여관방에서 밤새 서로를 껴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등 뒤에서 그녀를 안은 채, 나는 익숙한 그녀의 향기를 폐부 깊숙이 담았다.
이 향을, 이 온기를 영원히 기억하려는 듯이. 10년이라는 시간이 하룻밤 사이에 추억으로 변해버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미안해." 내가 그녀의 귓속말로 속삭였다.
"나도." 그녀가 대답했다. "사랑해. 정말 많이."
"나도. 지금도."
우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마주 앉은 해장국집에서 우리는 앞에 놓인 뚝배기의 김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말없이 밥알만 세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 말 없이 헤어졌다.
마지막까지도 그녀에게서는 그 향기가 났다. 샤넬 넘버 5. 이제는 영원히 그리움의 냄새가 되어버린.
그로부터 스무 해하고도 몇 번의 계절이 더 흘렀다.
그동안 나에게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예쁜 딸도 낳았다. 아내는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와는 다른 종류의 사랑이었다. 조용하고 안정적인, 어른들의 사랑이었다.
가끔 아내의 화장대에 놓여있는 샤넬 넘버 5를 보거나, 냄새를 맡으면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그 아픔도 점점 무뎌져갔다. 아니, 무뎌져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향기만큼은 결코 무뎌지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에서,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 향수 냄새를 맡으면, 나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곤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