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째의 고백

by 까칠한 한량

3주째의 고백


오늘로 그녀의 카페를 간 지 3주째다.

담배를 물고 걸어가면서, 그녀가 항상 같은 시간에 카푸치노를 시키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진다.

아마 그냥 자주 오는 단골손님 정도로 여기겠지. 감정의 노출은 서로를 피곤하고 힘들게 만든다.

아마추어처럼 걸리고 싶지 않다. 나 혼자만 느끼고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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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중년 남자의 사랑법이다. 조심스럽고 은밀하며, 상처받지 않으려 애쓴다.




노트북을 열고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허접한 글을 써내려간다.

머리 속에 든 게 없어 글쓰기는 늘 곤혹스럽다.

모든 생각을 집중해도 힘든데, 온통 생각은 그녀에게 가 있으니

오늘도 몇 자 못 적고 노트북을 닫을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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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권사님..." 하는 걸 보니 교회를 다니는 모양이다.

남편도 있는 것 같고 교회도 다니고. 내가 좋아하지 않을 모든 조건을 갖춘 여자다.




일요일 오전의 지옥과 천국


우리 집 옆집 할머니가 떠오른다.

일요일 오전마다 문을 두드리고 교회 주보와 함께 하나님을 믿으라며 장황하게 설교하시는 분.

말씀을 듣다 보면 나는 곧 지옥에 떨어져 불구덩이에서 온갖 고통을 당해야 한다고 하신다.

교회를 안 나가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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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죄 지은 것도 없고 전과도 없는데, 교회를 안 나가면 그렇게 된단다.

하나님의 좋은 말씀을 침을 튀기며 이야기해주시는 할머니 덕분에 나는 일요일 오전마다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달콤한 상상을 선사한다.

이왕이면 일요일 오전마다 그녀가 할머니 대신 내게 지옥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렇게된다면 지옥이란 단어가 아주 많이 달콤하게 들릴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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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으로의 초대

지금 나는 서천이라는 지역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예전엔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옛 흔적만 남아있는 곳.


국민학교 3학년 때 삼촌 손을 잡고 가서 영화 킹콩을 봤던 미아리 근처 대지극장을 많이 닮은

서천극장도, 지금은 문을 닫은 양조장도.

추레하게 조금씩 늙어가는 나와 서천이라는 마을이 참 많이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과거의 흔적과 지금의 모습들이. 나는 잊혀져가는 마을들을 다니며 사진과 함께 글을 적고 있다.

완성되어 누가 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뭐라도 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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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피우기 위해 요즘 조금씩 말을 안 듣기 시작하는 몸뚱이를 일으키는데,

그녀가 내 뒤에서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다 놀란 내 모습을 보며

죄송하다는 한마디와 함께 카운터 쪽으로 황급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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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 밖 담배를 피는 공간에서, 어쩜 그녀가 본 내용이 서천이 아니라 추레하게 늙어가며

사심을 가진 늙은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불그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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