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50대의 쉼의 기술

쉬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by 까칠한 한량



취업, 결혼, 출산, 그리고 성공. 그 단어들이 내 인생의 순서가 되면서

나는 쉬는 법을 잃어버렸다.


6시에 기상해서 부랴부랴 씻고 일산에서 용산까지

7시 20분 영어학원 도착

1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8시 30분 업무 시작

이 시간을 20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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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팀에서 비서실 그리고 영업팀,기획팀...나중엔 지사까지

참 열심히 달리고 달렸다...

그렇게

일하는 법, 버티는 법, 참는 법은 배웠지만 쉬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몸이 망가져서야 알았다.

쉬지 않으면, 정말로 걷지도 못하고 멈춰버린다는 걸.

퇴원하고 한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그게 너무 불안했다. 일을 안하고 있다는 것이...
하릴없이 TV를 켜도 시끄럽기만 하고,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머리를 짓눌렀다.


"뭘해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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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아파트 아래에서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이동장이 섰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상인의 외침,
사람들이 흥정하며 오가는 소리.

그 시끌벅적한 풍경이 이상하게 정겨웠다.

베란다에 서서 한참을 내려다봤다.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고,
놀이터에선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그 평범한 장면을 나는 바라봤다.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르고,
시간이 흘러가는 줄도 몰랐다.


그게, 아프고 난 뒤
내가 처음으로 나를 내려 놓고 맞이한 쉼의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쉼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일을 멈추는 게 아니라, 생각을 멈추는 연습.
그냥 앉아서 숨을 느끼는 일. 그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어차피 회사는 휴직중..

시간은 많은데...


그러다 조금씩, 사람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가 그들의 표정을 바라봤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지쳐 있었지만
그 얼굴 하나하나가 이상하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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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동묘 골동품거리를 걸었다.
낡은 시계, 오래된 LP, 빛이 바랜 사진들 사이에서
세월이 켜켜이 쌓인 냄새가 났다.
그 속에서 묘하게 마음이 느슨해졌다.
살아온 시간이 괜찮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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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무작정 달려 단양에서 문경으로 내려가는 국도 길가에 차를 세웠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멍하니 바라봤다.
시간이 멈춘 듯 조용했지만,
그 안에서 내 안의 소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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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날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정선장에 들렀다.
좋아하지도 않던 선지국 한 그릇을 시켜
낯선 사람들과 나란히 앉았다.


시장 특유의 소음, 뜨거운 국물의 향,
그 속에 묘하게 사람 사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잠시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세상 속에 섞여 있는 느낌이 괜찮았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게 내가 찾은 진짜 쉼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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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우린 너무 오래 달려왔다.
멈추면 불안하고, 쉬면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쉼은 도망이 아니라 복귀다.
몸이 멈춰야 마음이 돌아온다.

그리고 그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잠, 음식, 섹스 —우리는 이걸 본능이라 부른다.
이 세 가지 본능과 연결될 때,
비로소 진짜 회복이 시작된다.


잠은 마음의 정리이고,
음식은 몸의 위로이며,
섹스는 존재의 확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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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가 다시 균형을 찾을 때,
중년의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다.

쉼이 있어야 달리는 내가 있다.

그 쉼이 본능과 이어질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더 따뜻해진다.
이젠 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쉼은 사치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기술이다.

난 오늘도 그 쉼을 즐기려 한다.


한량의 한마디


“쉬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은 결국 자신을 잃는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게 가장 용기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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