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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10. 2019

23. 기술자들

          

 경찰서에 가서 도난 신고서(Police Report)를 썼다. 담당 경찰이 용의자 생김새를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났다. 분실물을 찾으려면 일련번호(Serial Number)가 꼭 필요하다고 하는데 난 메모해두지 않았다. 내가 현장 CCTV 영상을 보면 범인을 지목할 수 있다고 말했으나, 경찰은 일반인은 볼 수 없다고 한다. 담당 직원이 모니터 해보고 이메일로 결과를 알려 줄 테니 그때 경찰서에 다시 오라고 말한다.  

   

 분실한 카메라를 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생각을 하며 경찰서에서 나왔다. 한 달 전 포르투갈에서 도난 신고서를 쓴 경험이 있고 또 3일 후면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빨리 잡힐 범인이 아니었다. 카메라는 5년 사용한 것이라 미련 없다. 메모리카드(32G)가 문제였다.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튀니지 등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 3천장 정도가 날아 간 것이다. ‘여행기를 쓰려면 사진이 꼭 필요한데.’ 사진을 찍기 위해 애쓴 시간과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산티아고 길을 걷느라 고생한 생각을 하면 허망했다. 더욱이 여행이 끝나갈 막바지에 카메라를 잃어버려 속상했다.     


 난 물건을 잘 안 잃는 편이다. 여행할 땐 더 조심한다. 배낭에 딱 필요한 것만 넣고 다니기에 하나만 분실해도 여행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장소를 이동할 때는 항상 뒤돌아보고 빠뜨린 것이 있는지 살핀다. 누군가 “여권을 잃어 버렸다.” “돈을 잃어버렸다.”하면 참 ‘띨띨하다’고 혀를 차곤 했다.   

  

 일주일 전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도시를 한 바퀴 도는 전철을 탔다. 티켓을 들고 도시를 순환하는 전철이 어느 것인지 찾고 있는데 말쑥한 청년이 따라오라고 나를 이끈다. 퇴근 시간이라 전철이 붐볐다. 그는 전철 문이 막 닫히려 할 때 앞 칸에 내가 서있을 틈을 만들어 놓고 나를 불렀다. 마침 뒤쪽 칸이 좀 한산해서 그 쪽에 탔는데, 그가 얼른 내 쪽으로 옮겨왔다. 길 안내를 해주려는 고마운 청년이었다.      

 

 시내 중심가를 좀 벗어나자 승객들이 많이 내렸다. 전철 안은 몸을 편하게 움직일 만 했다. 갑자기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한다고 그가 말한다. 남자인 나한테 해코지 할 것도 없을 거고, 워낙 인상이 좋아서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다음 열차를 탔는데 승객이 꽉 차 있었다. 몇 정거장 후 열차 안이 한산해지자, 다시 내리자고 한다. 수상했다. 왜 전철을 자꾸 갈아타야 하는가? 그가 나와 목적지가 같다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혼자 가겠다고 했으나 그는 괜찮다며 계속 따라왔다.     


 복잡한 전철만 골라 타는 짓이 분명 소매치기라는 의심이 들었다. 입고 있는 가죽점퍼도 영락없다. 적당히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환승역으로 들어오는 전철을 얼른 갈아탔다. 역시 그도 따라 타서 내 뒤에 바짝 선다. 분명 옆으로 맨 소형 가방을 노리는 것이었다. 

 ‘바보 같은 놈. 물건을 훔치려면 사람을 잘 골라서 작업할 것이지!’ 

 허접한 그의 행동이 측은해 보였다.    


 신경을 곧추 세우고 그의 동태를 살폈다. 지하철 안은 승객이 꽉 차있었다. 여권과 돈은 가방 안쪽 지퍼를 열어야 꺼낼 수 있기에 절대 안전했다. 카메라는 바깥지퍼를 열면 되는데 부피와 무게감 때문에 몰래 꺼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카메라가 있는 쪽 지퍼를 살금살금 여는 듯 했다. 내 옆에 있는 그는 아니었다. 뒤쪽 남자가 내 가방 지퍼를 조금씩 열고 있었다. 영화에서 봄직한 소매치기 일당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2인조일까? 3인조일까?’ 

 웃으면서 뒤로 맨 가방을 앞으로 옮겼다. 내가 너희 의도를 다 알고 있다는 여유 있는 표정을 하며 나를 따라온 남자를 쳐다봤다. 그들은 무안한지 다음 역에서 내렸다. 웃음도 났고 걱정도 됐다.  

 ‘저렇게 서툴러서 밥은 먹을 수 있을까?’    

 

 참으로 귀여운 소매치기를 만난 후 가방을 바꿔 버렸다. 이전 것은 천으로 만들어 마음먹으면 면도칼로 긋고 카메라를 꺼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질긴 소가죽 가방을 샀다. 튀니지 가죽 제품은 한국보다 몇 갑절 싸서 부담이 없었다. 비가 자주 와서 새로 산 가방을 아끼다가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넘어와 처음으로 가방을 메고 나왔다. 걷기 좋은 날씨였다.     


 바르셀로나 거리는 가우디(Gaudi) 일색이다. 부드러운 곡선과 섬세한 색채가 도시에 넘쳐났다. 그의 건축물은 모두 구불구불했다. 건물의 창과 벽을 보면 지중해의 태양아래 붉게 출렁이는 파도를 보는 듯하다. 그가 만든 ‘구엘공원(Park Guel)’을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바르셀로나에서 처음 타는 지하철이어서 노선을 찾고 있는데 지하철이 들어왔다. 낮 시간이라 환산했다. 문이 열려 들어가는데, 어떤 남자가 내리면서 왼쪽 발을 밟았다. 그리곤 미안하다면서 두꺼운 종이로 내 신발을 탁탁! 털었다. 아무것도 묻은 것 없어 괜찮다고 했다. 그는 친절하게도 두 번 더 신발을 털어주었다. 지하철 문이 닫힘과 동시에 그는 떠났다.  


 ‘별 싱거운 사람도 다 있네!’하며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갑자기 맞은편에 있던 고등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나한테 말했다. 

 “혹시 잃어버린 것 없는지 가방을 확인해 보세요.”

 “없는데?” 하면서 가방을 열어보곤 깜짝 놀랐다. 카메라가 없었다. 두꺼운 가죽 가방이라 카메라가 빠진 무게감을 느끼지 못했다. 지하철은 이미 출발했고, 그놈은 뒷모습만 남긴 채 저 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짧은 순간에 카메라를 빼갔다.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 나한테 이런 일은 놀라운 것이다. 그는 허리를 굽혀 오른손으로 내 왼쪽 신발을 털며 시선을 끈 후, 왼손으로 가죽가방을 열어 카메라를 꺼내간 것이다. 나는 신발만 보고 있었지 귀신같은 왼손은 보질 못했다. 어처구니없이 당한 나는 허탈했다. 원망스러움도 잠시, 숙련되고 우아한 그의 솜씨가 나를 자괴감으로 몰았다. 나는 남달리 예민한 편인데 그가 가방에 손을 넣어 뒤적일 때 아무런 낌새를 채지 못했다.    


 그의 손은 몸의 일부가 아니라, 따로 움직이는 문어발처럼 부드럽고 빨랐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찰나에 일을 끝냈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는 진정 예술의 경지에 이른 기술자였다.    

 

 그를 경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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