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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Nov 16. 2019

고기 청소

 “무슨 일을 합니까?”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그녀에게 구글 번역기를 돌려 스페인어로 물었다. 그녀는 아들이 쓰던 노트에 스페인어로 써서 내밀었다. 번역기에 스펠링을 입력하니 “고기청소”라는 단어가 나왔다. 


 ‘고기청소라는 직업이 뭘까?’


 궁금해서 계속 질문했다. 그녀 이름은 ‘페트리시아(Patricia)’다. 다섯 살 아들 ‘딜라(Dila)’와 함께 17평 월세 아파트에 살고 있다. 바르셀로나 중심가에 있어 월세 800유로를 내고 있단다. 그녀가 말한 ‘고기청소’는 어시장에서 고기 손질을 하고 있다는 뜻 같았다. 월급이 900유로라고 해서 월세내고 남는 돈(100유로)으로 생활이 되냐고 물었다. 친구한테 방 한개 세주고 정부 보조금 그리고 에어비엔비(Airbnb) 수입으로 생활한다고 했다. 미안했지만 꼭 알고 싶어 물었다.  


 “에어비엔비 한 달 소득이 얼마인가요?”

 그녀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400유로쯤 돼요.”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는 여행자숙소인 알베르게에서 잤다. 다른 나라에선 에어비엔비를 이용했다. 가격이 쌀 뿐 아니라 현지 문화를 경험 할 수 있어서다. 내가 에어비엔비 숙소를 정할 때 우선시 하는 것은 ‘가격·위치·주방사용·시설’ 순이다.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집주인이 주소와 전화번호를 보내주고, 나는 구글 지도를 보고 찾아간다. 보통 집주인이 띄워놓은 사진을 꼼꼼히 확인하고 가격대비 시설이 괜찮은 집을 예약하곤 했다. 인터넷의 ‘페트리시아’ 집은 사진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침대와 거실 사진뿐이었다. 


 그녀가 제시한 숙박비 40유로는 대부분 시설이 괜찮은 집이다. 그녀 집도 당연 좋을 거고, 투숙객 평가도 높아 3일을 예약했다. 집에서 요리만 해 먹을 수 있으면 숙박비는 문제가 안 된다. 그녀한테서 “낮엔 일을 해서 친구를 보내겠다.”는 문자가 왔다. 약속 시간에 친구를 아파트 입구에서 만났다. 4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계단은 내가 맨 배낭이 툭툭 부딪칠 만큼 좁았다. 여행 막바지에 숙소를 잘못 찍은 것 같아 불안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이럴 수가!’ 나는 놀라서 한참 서있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녀 집은 좁고, 지저분하고 어두워 숨이 막힐 정도였다. 샤워부스도 없고 화장실 문은 주름 슬라이드로 열고 닫는 것이었다. 부엌은 한사람도 서있기 어려울 만큼 작고 초라했다. 기가 막혔다.   

 

 이건 처음 당해본 숙소 사기였다. 그녀 친구한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집주인이 언제 오냐고 물었다. 배낭은 풀지도 않고 방에 던져두고 아파트 키를 받아 집에서 나왔다. 그녀가 사는 집은 바르셀로나 할렘가에 있었다. 골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위치도 나쁜데 집안은 한술 더 떴다. 화가 나서 와이파이가 되는 커피숍에 들어가 에어비엔비 본사에 항의 메일을 보냈다. 


 “형편없는 숙소다. 하루 40유로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게다가 집 주인은 영어를 못해 의사소통도 안 된다. 계약을 취소하려고 한다.”


 방 예약을 취소하려면 에어비엔비 본사에서 승낙을 받고 집 주인을 만나 해약 통보를 하고 집 키를 돌려주면 된다. 물론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내가 위약금을 내더라도 여행자를 속인 집주인한테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댓글에 사기당한 사용 후기를 써두면 그녀 집엔 아무도 안 올 것이다. 집주인은 직장에서 저녁 6시쯤 돌아온다니 그때 들어가 따져볼 생각이다. 

 오늘은 늦었으니 하루만 거기서 자고, 내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작정했다. 주로 음식을 숙소에서 해 먹을 요량이었으나, 그녀의 부엌에선 차도 끓여 마시고 싶지 않았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그녀가 도착할 즈음 집으로 갔다.     


 “띵동. 띵동띵동!”

 현관 벨을 신경질적으로 눌렀다. 현관문이 열렸다. 집주인 ‘페트리시아’가 있었다. 순간 나는 멍했다. 집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서 있었다. 떡 벌어진 앞니를 보이며 그녀는 웃고 있었다. 생머리를 뒤로 묶은 그녀의 맨얼굴은 정면에서 보기 민망할 만큼 가난이 굽이굽이 흘렀다. 나를 주려고 사왔다며 큰 생수병 두개를 내민다. 아이를 안은 채 무거운 생수를 들고 4층까지 올라온 것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녀와 한 시간이나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얘기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35세란다. 5년 전에 이혼했다. 이혼한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여서 국가 보호시설에 수용돼 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녀가 아들과 잠자는 방도 들여다봤다. 장난감 바구니와 작은 침대뿐인데도 방은 꽉 찼다.


 내 방으로 와서 침대에 덜렁 누웠다. 투숙객이 후기를 좋게 써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설대신 순박함으로 여행자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어린 아들과 창문도 없는 작은 방에 살면서  햇볕 드는 안방을 여행자 숙소로 내놓았다. 내가 주는 3일 숙박비는 그녀에겐 큰돈일 게다.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아파트 월세 내고, 가족이 생활해야하는 돈이다. 아들은 엄마가 일이 끝날 때까지 유치원에서 매일 기다려야 한다. 


 나는 에어비엔비에 메일을 다시 보냈다.

 “시설이 불편하지만 집 주인이 친절해서 예정대로 3일 있겠다.” 


 숙소를 옮기겠다는 말 대신 ‘고기청소’하는 일터가 어디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다음날 그녀가 5년간 일해 온 수산시장을 찾아갔다. 가게는 ‘마스클란(Masclan)’이었고, 대구를 전문으로 가공해서 판매하는 곳이었다. 진열대엔 대구 살로 만든 스테이크나 튀김 등이 있었다. 모두 그녀가 작업해 내 놓은 생선인 듯 했다. 가게 주인한테 ‘페트리시아’를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고기 손질을 하다말고 두꺼운 비닐 앞치마를 입은 채 주방에서 나왔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가족이 찾아온 것 마냥 쑥스럽게 웃었다. 수건을 머리에 둘러쓰고 계면쩍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형편없는 숙소를 여행자에게 제공하여 사기 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고기청소’하는 그녀의 일터를 찾은 것은, 그녀가 어시장에 조그만 가게 하나쯤 갖고 있는 줄 알았다. 나는 그녀 가게에 앉아 손님들이 생선을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는 밀폐된 주방에서 생선을 깨끗하게 손질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를 붙잡고 오래 얘기할 수 없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주인한테 통역을 부탁했다. 


 “오늘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고 싶은데, 당신 아들이 뭘 좋아하나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홍합과 새우를 좋아해요!”   

  

 그녀는 내가 사온 홍합과 새우를 요리했다. 나는 야채와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얼큰한 해물탕을 생각하며 아들과 거실에서 놀고 있었다. 그녀가 가져온 밥상엔 해물탕이 없었다. 홍합과 새우에 양념을 넣지 않고 따로 볶아서 밥이랑 가져왔다. 나는 맛있는 저녁을 기대했다가 마땅치 않은 밥상을 받은 셈이다. 아들 ‘딜라’는 매운 해물탕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운맛 하나 없는 밥상에서 당뇨환자가 식이요법 하듯 그녀 아들과 이마를 맞대고, 나는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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