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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10. 2019

20. ‘페스’로 가는 길

 너무 화가 났다. 일이 지독히도 안 풀리는 날이었다. 모로코를 여행하다가 졸지에 경찰서까지 갔다. 출발도 못하고 경찰서에서 죽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려 간 것이 아니라, 참 어이없는 일로 갔다.   

 

 모로코는 북아프리카 지역이라 숲이 우거지고 사자가 자주 출몰하겠지? 기대했는데, 사자는커녕 원숭이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카사블랑카’에서 기차를 타고 ‘마라케시’로 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으로 알려진 ‘사하라’ 투어를 하려면 모로코 남부 도시 ‘마라케시(Marrakech)’로 가야 한다. 


 마라케시는 여행자들이 몰리는 도시라 상인들 바가지요금이 극성이다. 택시 타기도 만만찮다. 외국인이 택시를 잡으면 요금을 5배로 올려친다. 미터 요금을 주겠다하면 쌩! 가버린다. ‘마라케시’의 상업중심지 ‘엘프나(El-Fna)’ 광장은 더 심하다. 이곳은 사하라 투어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가 즐비하고 볼 것이 많은 곳이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주머니를 꽉 여미고 다녀야 할 것이다.  

   

 낮엔 텅 빈 ‘엘프나’ 광장은 어두워지면 딴 세상이 된다. 인도에서조차 보지 못했던 무질서한 현장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언제 사람들이 모여든 건지 광장은 난장판이 됐다. 세상 모든 소리가 난무하고, 온갖 장사치들이 판을 친다. 코브라를 춤추게 하는 피리소리, 야바위꾼 북소리, 장사꾼들 호객소리, 격투기 응원소리 등 엄청난 소음이 여행자를 압도한다. 혼돈의 시장판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꺼내면 시장 양아치가 뱀을 팔에 감은 채 득달같이 달려와서 소리친다.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라!”     


 이런 무질서가 여행자를 매료시킨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수라장이다. 내가 이곳 분위기에 휩쓸려 사하라 투어 2박3일 상품을 구매한 것이 화근이었다. 

 사하라 투어 후 마라케시로 돌아오지 않고 바로 다음 목적지 ‘페스(Fes)’로 연결되는 차편이 있어서였다. 2박3일 요금 1,050디르함(13만원)을 냈다. 이번 여행 중 단체투어를 신청한건 처음이다. 사막투어 후 페스까지 이동시켜 주는 조건이다. 가격이 비쌌지만 페스를 가려면 방법이 없다.   

  

 모로코 북부 ‘페스’는 미로의 도시라고 불린다. 9천개의 골목길이 미로로 이어지는 옛날시장이 있고, 천년 전통 가죽 염색공장이 있어 유명한 곳이다. 사하라에서 마라케시로 돌아오는 길도, 사하라에서 페스까지 바로 가는 길도 하루거리다. 시간을 벌기 위해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고 바로 페스로 가는 차편을 선택했다.    


 ‘마라케시’에서 ‘사하라’까지 가는 시간만 1박2일이 걸렸다. 또 사막 안으로 들어가려면 ‘메르주가(Merzouga)’ 마을에서 낙타를 타고 가야한다. 사하라 일몰을 보면서 캠프로 들어가 숙박하고, 다음날 새벽 일출을 보며 마을로 돌아오는 스케줄이다. 낙타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것이 편할 정도로 엉덩이가 아프고 속도도 느렸다. 낙타는 그저 투어비용을 부풀리기 위한 목적인 것 같았다. 요르단에서 ‘와디럼’ 사막을 자주 갔지만 낙타는 타지 않고 걸어 다녔다. 같은 사막인데 투어 비용은 와디럼 보다 사하라가 5배 정도 비쌌다. 


 ‘와디럼은 붉은 모래사막이고, 사하라는 은빛 모래사막 일 뿐이다.’ 

 왠지 바가지 옴팍 쓴 기분이었다. 값싸게 요르단을 여행 다녔기에 ‘사하라’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막 텐트에서 여행자들과 함께 먹은 저녁도 그렇고, 헬 수 없는 별을 보는 일도 그저 쓸쓸했다.   

  

 사하라 투어가 끝난 후 ‘페스’로 가기 위해 봉고차에 앉았다. 산맥을 넘어 북쪽으로 7시간을 달려야 하는 먼 거리다. 분명 ‘페스’까지 가는 이동 비용을 여행사에 완납했는데, 현지 차량 운전수는 ‘페스’까지 이동을 거부했다.

 계약서를 보여줬으나 “나는 돈을 받지 못했다.”는 말만하고 딴청을 피운다. 어리바리한 여행자 등쳐먹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안 그래도 사하라 투어를 비싸게 해서 속이 뒤틀리는데 운전수까지 한술 더 뜬다. 추가 요금을 안 내고 봉고차 안에서 맘대로 하라며 한 시간을 버텼다.     


 나 때문에 출발 못하는 외국인들한테는 미안했지만, 더 내야하는 돈도 아깝고 운전수 심보가 괘씸했다. 마침 우리가 탄 차 옆으로 교통경찰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얼른 교통경찰을 불렀다. 여권과 투어 영수증을 보여주면서 운전수 횡포를 일렀다.

 교통경찰은 나를 감동시켰다. 나이가 30살 정도 됨직한데 내가 말할 때마다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운전수를 불러 쌀쌀맞게 면허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경찰은 “뭘 도와주면 되냐”고 물었다. 나는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 그제야 운전수는 페스까지 그냥 태워 주겠다고 한다.


 ‘이제 기선은 내가 잡았다.’     

 경찰서에서 담당 직원에게 서툰 아랍어로 자초지종을 말했다. 

 “나는 모로코를 좋아한다. 그런데 사기꾼 운전수를 만나서 고생하고 있다. 아침 일찍 페스로 출발했어야 하는데 운전수 때문에 못 갔다. 내 여행 일정에 차질이 생겨 변상을 받고 싶다.”

 경찰이 물었다.

 “얼마를 원합니까?”


 바가지 써서 여행사에 지급한 1,050디르함(13만원)을 달라고 했다. 경찰은 어딘가 통화를 한 후 내게 말했다. 

 “그 돈을 받으려면 마라케시로 가서 여행사에 환불 요구를 해야 한다. 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는 웃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이미 2박3일 투어가 끝났는데, 돈을 모두 돌려달라는 것은 지나치지 않는가?”    

 나 때문에 출발 못하고 기다리는 외국인도 있고 또 내가 너무 억지 부린다는 생각에 한발 물러섰다. 경찰한테 말했다.

 “돈 보다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 운전사가 사과하면 용서한다.” 

 운전수는 경찰이 지켜보는 앞에서 허리를 90도 굽혀 정중히 사과했다. 오전 내내 기다린 차는 마침내 ‘페스’로 출발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페스에 도착했어야 하는 차는 밤이 되어도 산맥을 넘지 못했다. 밤엔 기온이 떨어져 빙판이 되었다. 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데 눈까지 흩날렸다. 나 때문에 네 시간을 기다린 중국 아저씨와 젊은 인도 커플한데 미안하다고 말했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나와 달리 그들은 호텔을 예약한 상태라 어떻게든 오늘 ‘페스’로 가야할게다. 갈 수 있을까 걱정되고, 간다 한들 밤 열시는 족히 넘어야 도착할 것 같다.   

  

 산맥을 넘어 내리막길은 이미 눈이 쌓였다. 차가 빙판길에서 비틀거릴 때마다 우리는 엉덩이를 치켜들고 운전수를 바라봤다.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앞좌석에 앉은 중국 아저씨 모습이 보였다. 그는 팔 손잡이를 꽉 잡고 흩뿌리는 눈을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나는 말없는 그가 측은했다. 오전에 일어난 일을 곱씹어 봤다. 

 ‘남을 생각지 않고 부당한 것을 심하게 탓한 내 행동이 옳았을까?’


 내가 분해서 운전수한테 사과 받으려다 엉뚱한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 나는 몰염치한 운전수를 끌고 경찰서까지 가서 내 억울함을 풀었다. 그 사이 동행자들은 봉고차 안에서 네 시간이나 기다렸다. 아까운 시간 버리고 밤늦게까지 고생하고 있어도 나한테 싫은 소리 한마디 없다. 

 나 원 참!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뭐라고 불평 한마디 해주면 어디가 덧나는지?

 ‘페스’로 가는 길 내내 이들은 선한 사마리아(Samaria)인처럼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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